[미디어펜=김소정 기자]“대화가 없는 것도 대화라고 했다. 지금은 북한과 대화할 시기가 아니라 북한 핵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확장억제 대책을 강구하는 것을 중심에 둬야 한다.”
김대중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으로 재직하며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 성사에 기여했던 강인덕(90) 전 장관은 지난 18일 가진 언론 간담회에서 “지금은 (우리가) 남북대화를 하려고 해도 북한이 움직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향후 남북대화가 재개되고 북핵 협상이 시작될 때를 대비해 지금은 확장억제에 주력할 때”라고 진단했다.
그는 최근 대만해협을 둘러싼 미중 간 갈등을 언급하며 “대만 문제가 격화하면 중국은 반드시 북한을 이용하려 할 것이다. 대만을 둘러싼 갈등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즉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미러 간 갈등이 극심해지고,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대만해협의 중간선을 넘는 등 빈번한 무력시위를 벌이는 일촉즉발의 동북아 정세를 감안한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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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일 평양 순안공항(평양국제비행장)에 도착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2019.6.20./사진=조선중앙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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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 간 대결구도가 더욱 뚜렷해지는 상황이다. 북한은 한미의 대화 제의에도 불구하고 핵·미사일 위협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신냉전 구도를 반기는 모양새다. 하지만 북한의 실제 핵공격이 있을 때 미국의 핵우산이 제대로 작동될지에 아직까지 의구심이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일각에서 제기되는 자체 핵무장 주장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강 전 장관은 “나토 식 전술핵 재배치로 가야 한다”고 답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식 핵공유를 말하는 것으로 자체 핵무장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다만 핵단추를 누를 수 있는 권한이 미국에게만 있는 것이 문제”라며 “우리도 핵단추를 누를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전 장관은 북한의 ‘김정은 정권’에 대해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훈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을 뿐 전략적인 사고를 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아직 젊은 지도자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북한을 폐쇄적인 은둔국가로 이끌고 있는 것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강 전 장관은 “앞으로도 김정은은 선대의 유훈대로만 통치할 것이다. 그러니까 통일 문제가 얼마나 어려울지 알 수 있다”면서 “북한에서 왜 민중봉기와 같은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북한주민들은 역사적으로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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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이 18일 서울 모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3.4.18./사진=미디어펜 |
강 전 장관은 1932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그는 “북한에서 ‘자유의 시기’라고 할 수 있는 1945년 8월 15일 광복일부터 평양에 소련군이 들어온 같은 해 8월 25일 이전까지 딱 10일밖에 없었다”며 “더구나 북한에는 양반이 없었다. 역사적으로 지배만 당해온 사람들이 봉건시대에서 곧바로 일제강점기를 겪고 해방이 되면서 김일성의 지배를 받아온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일관계 개선과 관련해 윤석열정부의 노력을 평가한 강 전 장관은 한일 정상회담 이후 일본에서 지인들에게 들은 바로는 일본 내 평가가 좋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총리 주변에 있는 강경 보수 정치인이 일본의 전체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통일부 장관을 그만 두고 일본 세이가쿠인대학에서 객원교수로 13년을 지냈다.
1960년대 중앙정보부 북한과장을 지내면서 인연을 맺은 일본인 교수의 권유 덕분이었다고 했다. 그가 장관 시절 도쿄에서 오부치 총리를 직접 만나 한일 간 민간우호협력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그가 최근 펴낸 ‘한 중앙정보 분석관의 삶’이란 책에서도 이 시절을 회고하며 “군국주의 망상을 버리지 못한 ‘우익들의 핏대’를 냉소하며 일본의 역사적 만행을 깊이 반성하는 양식 있는 주장을 수시로 들었다”고 썼다.
강 전 장관은 “일본에 자신들의 과거사를 반성하고 한일 협력을 중요시하는 지식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한국이 그런 양식 있는 지식인들과 유대를 강화해서 협력을 도모해야 한다”고 조언하면서 다만 일본의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해선 “‘해결되지 않은 채로 해결한다’는 진리도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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