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윤광원 기자] 최근 '독보적인 꼴찌'를 면치 못한 캄보디아의 한 어린 육상선수가 세계적인 화제가 됐었다.
그 주인공은 지난 8일(현지시간) 프놈펜에서 열린 제32회 동남아시안게임(SEA Games) 여자 육상 5000m 경기에서, 결승선을 맨 마지막으로 통과한 캄보디아 보우 삼낭(20) 선수다.
빈혈 증세와 실전 경험 부족으로 일찌감치 최하위로 처진 삼낭이었다. 경기 전 코칭스태프가 출전을 말렸을 정도였다.
설상가상, 멀리 앞서 달리던 선수들이 모두 결승선을 통과하고 트랙에 그만 남자, 갑자기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트랙에 거센 빗줄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하지만 삼낭에게는 조국 캄보디아에서 처음으로 열린 국제대회 무대에서 중도 포기할 수는 없다는 책임감이 모든 역경보다 더 컸다.
그의 포기 없는 투혼에 캄보디아인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고, 훈센 총리는 축전과 함께 1만 달러의 상금을 수여했으며,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홈페이지에 삼낭을 소개하는 특집기사를 실었다.
삼낭은 "조금 느리거나 빠르거나 관계없이, 누구나 인생에서 똑같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우리는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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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홈페이지에 실린 '아름다운 꼴찌' 보우 삼낭 선수/사진=IOC |
이처럼 스포츠 경기에서는 종종 '아름다운 꼴찌'가 사람들의 박수를 받곤 한다.
한국에선 여자농구 선수 김정은(36)이 잔잔한 감동을 전했다.
김정은은 약체 팀 '하나원큐'에서 데뷔, 그 시즌 신인상을 차지했고 리그 득점왕에까지 오르며 '고군분투'했지만, 팀 성적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자유계약선수(FA)로 강팀 우리은행으로 옮긴 뒤, 꿈에 그리던 우승 트로피를 두 차례 들어 올렸다.
김정은은 2017∼2018시즌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했고, 2022∼2023시즌에는 두 번째 챔프전 우승까지 경험했다.
그래도 친정팀을 잊지 못했던 그는 미련 없이 꼴찌팀으로 돌아왔다.
그의 활약 덕에 우승한 우리은행은 물론, 신한은행도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붙잡으려 했지만, 그의 선택은 뜻밖이었다.
하나원큐는 6승 24패로, 지난 시즌 최하위(6위)에 그쳤다.
김정은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하나원큐는 내 청춘을 다 바친 곳이다. 팀을 위해 정말 열심히 뛰었다. '내가 이 팀을 꼭 정상에 올려 놓겠다'는 사명감이 정말 컸다"면서 "친정팀에서 후배들의 성장을 도우면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게, 가장 가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은행 이적 초기에는 (나를 내보낸) 하나원큐가 미울 때도 있었다. 그런데 선수들이 빠져나가며 팀이 무너지는 걸 보니까, 어떤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 들면서 마음이 참 안 좋았다. 친정팀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계약은 내 농구 인생에서 '덤'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코트 위에서는 예전 같지 못하다"면서 "그 대신 몸 관리법이나 프로 선수의 마음가짐 같은 부분을 후배들에게 진정성 있게 알려주려 한다. 하나원큐를 선수들이 오고 싶어 하는 팀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편 프로야구 원년 만년 꼴찌팀 '삼미슈퍼스타즈'의 투수 감사용, 동계올림픽의 불모지 자메이카의 봅슬레이 대표팀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감동을 선사한 바 있다.
1977년 박완서 선생의 수필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가 있다.
수필의 화자인 '나'는 마라톤 경기를 보게 된다. 그러나 경기장에 들어섰을 때 1등 주자는 이미 골인한 뒤였고, 나는 꼴찌에 가까운 후속 주자들만 봐야 했다.
하지만 나는 꼴찌의 얼굴 표정을 보고 감동한다. 꼴찌 주자의 모습은 고통스럽고 고독하지만. 위대해 보였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선수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리기를 바라면서, 그 선수에게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나는 일등이 아닌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가 더 없이 감동적이고, 새로운 희열을 동반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이 작품에서 마라톤 경기와 마라토너는 우리 삶에 비유될 수 있다.
고독과 고통을 감수하면서 등수와 상관없이 묵묵히 뛰는 꼴찌는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의미하고, 작가는 이들의 삶에 애정과 격려를 보내는 것이다.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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