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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부 류준현 기자 |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한국씨티은행의 대표 인기 상품인 '국제현금·체크카드'는 해외 여행객과 유학생들에게 '혜자카드'로 불린다. 전 세계 씨티은행 지점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1회 최대 인출시 수수료로 단돈 1달러에 네트워크수수료로 인출액의 0.2%만 지불하면 되는 까닭이다.
원달러 환율을 1100원으로 가정할 때 300달러를 인출한다면 한화로 약 1760원만 지불하면 된다. 세계적으로 오프라인 지점망을 갖춘 은행 중 최저비용으로 인출 서비스를 누릴 수 있어, 이 카드는 해외 방문시 필수 준비물로 거론된다.
이처럼 은행 수수료는 우리나라 소비자에게 크지 않지만 아깝고 민감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은행들이 '한두 푼'씩 모은 수수료는 주요 수익원인 비이자이익의 원동력이 된다. KB경영연구소와 한국금융연구원 등에 따르면 미국 주요 상업은행들은 △월간 계좌 유지 △ATM 출금한도 △초과인출 △부가비용 △송금 등 다양한 명목으로 수수료를 받아내고 있다.
대형 5대 은행만 놓고 보면 비이자이익 비중이 지난해에만 34.2%에 달했다. 소소한 비용까지 고스란히 받아내 비이자이익의 바닥을 튼튼히 하고 지점유지 및 네트워크망 관리 등에 활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은행의 비이자이익은 바닥을 향하고 있다. 지난해 5대(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시중은행의 총영업이익에서 비이자이익 비중은 4.0%에 불과했다. 특히 은행권이 벌어들이는 대고객수수료(송금·CD/ATM 이용 등)는 지난해 총 수수료수입 7조 7300억원 중 2400억원에 불과했다. 점유율로는 3.2%에 불과하다.
오래 전부터 '서비스는 공짜'라는 집단 인식과 유료에 대한 정서적 반감이 더해져 은행들이 무료나 원가 이하로 제공하던 서비스 수수료율을 현실화하지 못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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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5대(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시중은행의 총영업이익에서 비이자이익 비중은 4.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들이 수수료율 현실화를 통해 비이자이익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사진=김상문 기자 |
문제점을 지적한 보고서들이 이미 즐비하지만 수수료율 현실화는 쉽지 않다. 이 와중에 은행권이 돈을 많이 벌었다는 죄를 안고 있는 까닭이다.
2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은행권의 당기순이익은 7조원으로 전분기 4조 5000억원 대비 약 55.9%(2조 5000억원) 폭증했다. 예대금리차(예금과 대출금리 간 격차) 축소를 위한 대출금리 인하 등의 노력에도 금리상승에 따른 마진 확대가 상당한 것이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은행권이 홀로 천문학적 돈잔치를 하게 된 만큼, 정부와 금융당국의 개입 명분은 충분하다. 특히 '은행은 공공재' '상생금융' 이라는 미명 아래 서비스 무료화 요구는 한층 노골화되고 있다. 5대 은행을 비롯 지방은행들이 내놓은 모바일·인터넷뱅킹 타행이체수수료 면제, 가계대출 중도상환수수료 면제, 고령층 고객 ATM 수수료 면제 등의 조치는 당연해진지 오래다.
이에 "서민에게 거둔 돈으로 막대한 수익을 내면서 수수료 면제로 생색낸다" "앉아서 돈장사나 한다" 등의 원색적인 비난도 쏟아진다.
은행권에서는 수수료 무료화를 사회 통념상 어쩔 수 없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분위기다. 한 관계자는 "은행원들도 수수료를 안 받는다고 은행이 망할 것이라 보진 않는다"면서도 "범법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마치 수수료를 갈취했다는 듯한 인식들이 불편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은행원과의 상담으로 수수료를 지불하는 상담자문수수료도 있는데,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며 "'은행들이 안 받아도 되는 비용을 받고 있다'는 국민 인식이 강한데, 오프라인 채널을 유지하려면 수수료는 당연히 받아야 한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물론 금융소비자로서 은행들의 수수료 면제 조치는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수수료율 현실화를 늦춘 대가는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당장 동네 상가 1층에 자리하던 은행 점포가 2층으로 옮겨가고, 또다른 지점과 통폐합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은행 점포수는 2012년 7673개에 달했지만 매년 점진적으로 감소해 지난해에는 5800개로 줄었다.
4대(KB국민·신한·하나·우리) 시중은행의 ATM은 지난 3월 말 1만 6748개로 지난 2020년 3월 말 2만 1247개 대비 21% 줄었다. 3년간 하루 4대꼴로 사라진 셈이다.
금융의 비대면화를 비롯해 현금 사용 감소, 인건비·유지관리비 증가 등이 구조조정의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하지만 금융 소외계층을 비롯해 대출상담, 자산관리(WM) 등 오프라인 수요는 여전히 많다. 수수료율 현실화가 이미 정착했다면 오프라인 구조조정이 활발했을지 의문이 남는 대목이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은행은 공공재이기에 서비스 이용료를 안 내어도 된다"라는 것으로 곡해(曲解)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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