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통일부 장관을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하면서 직접 통일부의 역할 변화를 주문했다. 통일부 장관에 ‘강경파’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 차관에 ‘미국통’ 외교관 문승현 주태국대사를 발탁한데다 통일비서관까지 모두 외부인사로 교체된데 이어 대통령의 직접적인 발언까지 나와 귀추가 주목된다.
윤 대통령은 “통일부가 대북지원부와 같은 역할을 해왔는데, 그래선 안된다. 이제 통일부가 달라질 때가 됐다”며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통일은 남북한의 모든 주민들이 더 잘 사는 통일,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기존 남북 대화 및 교류협력에 주력했던 통일부의 역할을 바꾸라는 것이다. 이미 윤석열정부 들어 통일부와 소속기관의 조직 변화가 있었고, 이를 볼 때 북한인권 실태를 부각시켜 대내외에 알리는 역할이 주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 4월 이후 통일부의 교류협력실이 ‘교류협력국’으로 격하됐고, 북한인권 문제를 담당하는 인도협력국은 ‘인권인도실’로 확대 개편됐다. 또 정세분석국장 아래 북한정보공개센터장이 신설됐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사무처가 폐지됐고, 남북 간 연락기능은 남북회담본부에 신설될 남북연락과로 넘겨졌다.
따라서 앞으로 통일부가 북한인권 문제를 들어 대북 압박에 주력하면서 남북 대화와 교류 및 지원에 대한 원칙을 세우는 한편, 통일에 대한 구상 마련 등을 주 업무로 삼을 것으로 예상된다. 윤 대통령은 이번에 “앞으로 통일부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이라는 헌법정신에 따라 통일부 본연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 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선 그동안 통일부가 남북대화에 급급해 자유민주적 원칙을 허물거나 근시안적으로 접근한 경향이 있었던 만큼 이에 대한 문제 제기라는 평가가 나왔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그동안 통일부가 대북입장에서 다소 원칙이 흔들리고, 한반도 번영과 북한인권 문제에서도 근시안적으로 접근한 경향이 있어서 거기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통일부가 교류협력 만능주의에 빠져 대화만이 주요한 성과라는 관점에서 벗어나라는 의미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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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부가 있는 정부서울청사./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그러면서 홍 실장은 “대통령이 주문한 통일부 역할이 헌법에 정해져 있는 틀에서 벗어나는 개념은 아닌 것 같다. 일종의 관점의 변화가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통일부의 존립 근거는 평화통일을 규정한 헌법과 남북관계를 특수한 내부관계로 인정한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찾을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명시했고, 제4조에서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했다.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남북관계는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 잠정 형성된 특수관계’로 규정돼있다.
이를 근거로 통일부는 헌법기구로서 한반도 상항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중요한 역할이 있으며, 이는 대화와 교류협력에서 출발해야 하는 만큼 이런 역할과 성과를 폄하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통일부의 주요임무는 평화통일의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고, 분단국인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라며 “그 출발점은 북한과의 대화와 교류협력이다. 때로는 지원을 통한 신뢰 형성도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민주정부의 대북지원은 국회 동의 아래 남북교류협력기금 범위 내에서 이뤄져왔다. 1969년 통일부 창설 이후 남북 대화와 교류협력을 통한 한반도 전쟁방지 및 평화통일 기반조성 등 통일부의 역할과 성과를 폄하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양 교수는 “대통령의 북한지원부 발언은 ‘북한 퍼주기’ 선입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동서고금을 통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은 강력한 안보만으로는 불가능하다”면서 “결론적으로 대통령의 통일부 역할 변경론은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의 과정 속에서 통일을 만들어나가는 대통령의 책무를 자의적으로 변경하는 느낌”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남북관계가 안 좋을 때마다 ‘통일부 폐지론’이 끊이지 않았고, 보수정부에서 통일부의 조직을 축소시킨 예가 적지 않다. 하지만 70년 분단 현실에서 남북대화는 불현듯 이뤄졌던 만큼 통일부의 오랜 경험과 유연성은 꽤 중요하다. 따라서 북한을 상대하는 통일부의 특수성을 간과한 채 이전정부 지우기에만 급급한다면 이번 통일부 변화 추진은 패착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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