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 신규상장주들의 거래 첫날 가격제한폭을 확대하자 단기 차익을 노린 단타성 매매가 기승을 부리며 제도 개선의 취지가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6일 상장한 교보14호스팩에 이어 지난 12일 상장된 DB금융스팩11호의 주가 역시 극단적인 급등락을 반복했다. 오는 14일 상장되는 필에너지를 포함해 당분간 이러한 추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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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규상장주들의 거래 첫날 가격제한폭을 확대하자 단기 차익을 노린 단타성 매매가 기승을 부리며 제도 개선의 취지가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김상문 기자 |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부터 시행되고 있는 신규상장(IPO) 제도 개선이 제도 취지와는 다른 나비효과를 야기했다. 최근 금융당국은 상장 첫날 주가 변동폭을 공모가의 60~400% 수준으로 크게 확대했다. 이른바 ‘적정가격 발견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상장일엔 변동성완화장치(VI)도 발동되지 않기 때문에 기존 상장 주식보다 훨씬 역동적인 가격변화가 일어나곤 한다.
문제는 이 조치가 전혀 엉뚱한 곳에서 진가(?)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스팩(SPAC)주는 기업인수를 목적으로 설립된 서류상의 회사(페이퍼컴퍼니)를 지칭한다. 합병기업이 정해지지 않은 채 공모가 2000원(혹은 1만원)으로 상장되는 주식이다. 보통 시가총액이 100억원대 안팎에서 형성돼 매우 가볍고, 합병기업이 정해지기 전까지는 2000원 선에서 주가가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달 28일 변경된 제도 시행 이후 처음으로 상장된 하나29호스팩의 경우 주가 움직임에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었다. 2115원으로 시초가를 형성해 공모가 2000원 대비 다소 높은 편이긴 했지만 이 정도 주가변동은 과거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29호 다음날 상장된 시큐센이 코넥스 이전상장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공모가(3000원) 대비 293% 상승한 1만1800원까지 주가가 치솟으면서 ‘판’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알멕‧오픈놀 등 일반 기업은 물론 스팩주들 역시 상장하자마자 주가가 롤러코스터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6일 상장된 교보14호스팩의 경우 2170원으로 출발한 주가는 장중 한때 7980원까지 치솟으며 시장의 시선을 한 번에 집중시켰다. 상장 2일차인 지난 7일에는 8190원까지 주가가 올랐다가 현재 4000원 안팎에서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주가가 공모가 대비 2배 수준에서 형성된 것이다.
지난 12일 상장된 DB금융스팩11호는 아예 시초가부터 5750원으로 형성돼 6860원을 찍고 4435원까지 주가가 떨어지는 등 매우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현재 주가는 3500원대까지 떨어져 최고점에서 매수했다면 하루만에 ‘반토막’에 가까운 손실이 났을 가능성이 있다. 주식 투자자들이 흔히 표현하는 ‘천하제일 단타대회’가 다름 아닌 스팩주들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분위기가 바뀌자 지난 12일 공모주 청약을 마감한 SK9호스팩의 경우 청약 최종 경쟁률이 591.92:1에 달하는 ‘흥행 대박’을 기록했다. SK9호의 경우에도 상장 시초가부터 주가가 폭등할 것을 기대한 투자자들이 몰린 까닭이다. 스팩주 공모청약에 이렇게 많은 투자자들이 몰린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업계의 표정은 복잡하다. 시장이 역동성 있게 돌아간다는 사실 자체는 환영할 만하지만 스팩주들의 근거 없는 열풍에는 ‘대가’가 따를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단타매매 트렌드가 극에 달해 언젠가 거품이 꺼질 경우 뇌동매매에 나선 일반 투자자들이 결국 마지막 폭탄을 떠안게 되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오는 14일에도 필에너지가 상장을 앞두고 있어 극심한 가격변동이 예상되는 상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신규상장주들의 움직임은 차라리 ‘코인’이라고 보는 편이 온당해 보인다”고 우려하면서 “상장일 가격변동폭 확대조치가 제도도입 취지와는 별개로 뇌동매매 트렌드를 자극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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