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 러시아 극동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4년 5개월만에 재회했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은 크렘린궁이 밝힌 대로 유엔 대북제재 무력화 공조를 예고하고 있어 파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이날 오후 만난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양국 대표단이 배석한 확대회담을 1시간 30여분간 진행한 이후 통역만 배석한 일대일 단독회담을 30여분 이어갔다. 하지만 양측은 이번에 공동선언문을 포함한 어떤 문서도 발표하지 않았다.
다만 회담에 앞서 9분가량 공개된 모두발언에서 김 위원장은 “러시아와의 관계는 북한의 최우선 과제이다. 러시아가 패권세력에 맞서 성스러운 싸움에 나섰다. 항상 푸틴 대통령의 결정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왔고, 함께 제국주의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오늘 회담에서는 경제협력과 한반도 정세, 인도적 사안에 대해 회담하기를 바란다”면서 “초대에 응해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보다 앞서 우주기지에 도착한 뒤 ‘북한의 인공위성 개발을 도울 것인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래서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이라고 답했다. 아울러 '북한과의 군사 및 기술 협력 논의가 있을지'에 대해선 “우리는 서두르지 않고 모든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러시아에 무기 제공을 기정사실화하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푸틴 대통령도 북한과 적극 협력하겠다고 한 것이므로 앞서 크렘린궁이 시사한 대로 두 사람은 양측의 무기거래 및 군사기술 협력 수준을 최종 확정하기 위해 이번에 만났다.
더구나 러시아측은 그동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추가 제재에 반대하던 것을 넘어서서 아예 유엔의 대북제재를 와해시키려는 태도를 드러냈다. 크렘린궁 대변인은 전날 “우리는 북한과 유엔 제재에 대해 논의할 준비가 돼있다”면서 “우리에겐 워싱턴의 경고가 아니라 양국의 이익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크렘린궁은 이날에도 “외부로부터의 어떤 지적과 고함에도 우리는 우리와 우리이웃(북한)에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관계를 건설해나갈 것”이라며 “양국 관계는 군사협력, 안보 분야에서의 현안과 관련한 의견 교환 등 민감한 분야에서의 대화와 공조도 암시한다. 이는 두 주권국가의 문제로서 제3국의 우려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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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러시아 극동 아무르 지역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만나고 있다. 2023.9.13./사진=러시아 스프트니크 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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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간 무기거래 의혹은 7월 27일 전쟁 중인 러시아 국방상이 북한을 방문해 김 위원장과 무기전시회를 관람하고 열병식에 참석하면서 더욱 의심받았다. 이후 이달 4일 뉴욕타임스가 미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김 위원장의 방러 및 무기거래 협상 가능성을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정박 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는 11일(현지시간) 북한이 상당량의 여러 종류의 탄약을 러시아에 제공할 것이며, 방위산업을 지원할 원자재 제공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러 회담 장소가 시사하듯 앞으로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재진입 기술 등을 이전받을 수 있다. 이 밖에 북한 노동자의 러시아 송출 등도 예상된다. 러시아가 이번 회담에서 유엔 제재 무력화 카드를 들고 나선 것은 2019년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끝내 풀지 않던 유엔 제재를 흔들어 보이면서 북한으로부터 더 쉽게 많은 포탄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에 맞추듯 북한은 이날 오전 평양 순안 일대에서 단거리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이 미사일은 650㎞를 비행해 남한 전역이 북한 미사일의 사정권에 있음을 과시했다.
사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는 미국과 함께 지금의 비확산 체제를 만든 장본인 중 하나이다. 그런데도 그 책임을 저버리고 미국정부 관계자의 표현처럼 ‘국제사회의 왕따에게 구걸’하는 모양새를 마다하지 않는 것은 우크라이나전쟁에서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2019년 4월 25일 김 위원장을 만난 푸틴은 당시 북한이 주장하던 ‘단계적·동시적 비핵화’에 공감해주면서도 북미 대화를 지지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보장을 언급했다.
하지만 지금 푸틴은 우크라이나전쟁에서 기필코 이겨서 국제질서를 입맛대로 바꾸겠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고, 북한은 이를 절호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는 북한과 무기거래를 준비하면서 우리나라를 향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면 관계가 붕괴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북러 간 군사적으로 밀착할 경우 동북아 정세가 크게 출렁거릴 것은 물론 향후 미국과 갈등을 겪고 있는 중국까지 합세해 동북아 신냉전을 현실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찰떡같은 공조를 유지하려면 미국을 위시한 서방과 정면충돌해야 하는 과제를 잘 알고 있는 푸틴 대통령이 우선 현재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프로파간다에 나섰다는 관측도 있어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크렘린궁은 최근 김정은 위원장의 방북 사실을 인정하면서 푸틴 대통령이 조만간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도 만날 것이라며 중러 정상회담까지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중국은 12일 북러 정상회담에 대해 일단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관련 질문에 “북한 지도자의 러시아 방문은 북러 사이의 일”이라고 답했다.
일단 이번 북러 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북한의 포탄과 미사일이 러시아에 제공되는 등 북러 간 군사협력 시작은 기정사실화된 셈이다. 이후 러시아의 위성기술이나 잠수함기술 등이 실제로 어느 수준으로 북한에 이전될지 주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중러 및 북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지도 주목된다.
다만 북중러 연대에 대해선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여전히 존재한다. 최근까지 러시아대사를 지낸 장호진 외교차관은 방송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상황 때문에 북한과 밀착하는 것인데, 중국은 입장이 다르고, 북중러 연대를 논하기는 이르다”면서 “다만 미중관계에 따른 북중 간 접근, 우크라이나전쟁에 따른 북러 간 접근이 맞물린 상황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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