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올해 유엔총회에선 유난히 안전보장이사회에 대한 개혁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몇 해 전부터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에 대한 안보리 차원의 추가 제재가 불가능해진 것에 더해 최근 가시화된 북한과 러시아간 무기거래 정황에 따른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안보리 개혁 발언의 신호탄을 쏘았다. 그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공개 규탄하면서 “미국은 지난해 총회 이후 많은 회원국과 진지한 협의를 진행해왔다. 더 많은 개혁작업을 추진하고 공통점을 찾아 다가오는 해에는 진전을 이루기 위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힘을 보탰다. 그는 19일 총회 일반토의 첫날 연단에 올라 각국 정상 앞에서 “21세기의 경제 지형과 정치현실에 맞춰 유엔을 새롭게 해야 할 때가 됐다”며 “이는 안보리를 현재 국제사회 상황에 맞춰서 개혁하자는 뜻”이라고 밝혔다.
튀르키예 대통령도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말에 동의하며 “세계는 5개구보다 크다. 안보리는 더 이상 ‘안보 우산’이 아니라 5대 강대국의 ‘분쟁의 장’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일 유엔에서 북한과 러시아 간 무기거래 의혹을 겨냥해 “안보리 상임이사국(러시아)이 전쟁 수행에 필요한 무기와 군수품을 안보리 결의를 정면으로 위반한 정권(북한)에서 지원받는 현실은 자기모순”이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안보리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폭넓은 지지를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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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엔 총회 본회의장./사진=유엔 총회 홈페이지 |
이처럼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 정상들은 상임이사국 확대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특히 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리는 독일과 브라질, 일본 정상들도 개혁론에 목소리를 더했다.
반면, 안보리 상임이사국 가운데 미국을 제외한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4개국 정상들은 이번 총회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현상 역시 흔들리는 유엔의 권위를 반영해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을 보탠 셈이 됐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승전국 위주로 구성된 안보리에 대해 그동안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히며 번번이 좌절됐다. 특히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이 핵심 쟁점 중 하나로 5개 상임이사국 중 한 곳이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모든 결의안을 부결시킬 수 있기 때문에 안보리의 기능을 무력화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엔 헌장 108조의 합의 구조를 수정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로 상임이사국의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하다.
당초 거부권은 유엔 창설 당시 국제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던 2차 대전 승전국들의 유엔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마련됐다. 1945년 초 유엔 헌장 초안의 내용이 논의될 당시 승전국들에겐 유엔 가입이 자칫 자국의 정책에 대한 족쇄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가 있었다.
결국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5개국에게 선사된 특권이 역설적으로 유엔 체제를 흔들 수 있는 부메랑이 된 현실을 대표하는 사례가 바로 러시아의 북한과 무기거래이다. 안보리 결의로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과 군사협력을 하는 러시아가 스스로의 행동에 제재를 가할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사실상 안보리가 식물기구로 전락한 상황에서 개혁이 화두에 올랐지만 이 문제 역시 5개 상임이사국 모두 동의해야 하는 과제에 속한다. 이 때문에 안보리 개혁의 본질은 ‘이사국 확대’보다 ‘거부권 조정’에 맞춰져야 한다는 전문가 지적이 나오면서 실현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국제헌법협회 집행위원을 지낸 킴 셰플리 프린스턴대 국제법 교수는 미국의소리방송에서 “이미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교체된 사례가 2번 있었고 바로 중국, 러시아가 당사국”이라며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당초 상임이사국에 이름을 올린 국가는 미·영·프를 비롯해 소련과 중화민국(타이완)이었지만 중간에 러시아와 중국으로 변경됐다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 1971년 10월 유엔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모든 중국을 대표한다’는 결의가 통과되면서 타이완 대신 상임이사국에 올랐다. 러시아는 1991년 구소련의 해체로 인해 상임이사국 지위를 승계받은 경우이다.
특히 셰플리 교수는 “유엔 헌장 23조엔 여전히 상임이사국에 타이완과 소련이 기재돼있다”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유엔헌장을 위반하고, 중국과 함께 거부권을 남발해 안보리 결의 논의를 막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법상 구소련의 국가의무를 이어받을 후계국이 누구인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촉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우크라이나도 구소련의 일부였기 때문에 현재 러시아의 상임이사국 지위를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유엔헌장 수정없이도 러시아와 중국의 상임이사국 지위 해석을 새롭게 할 수 있다는 주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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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엔 총회 본회의장./사진=유엔 총회 홈페이지 |
이에 대해 컬럼비아대 국제관계학 교수이자 2001년부터 2년간 유엔 사무차장 겸 법률정책특보를 지낸 마이클 도일 교수도 미국의소리방송에서 “앞서 중국, 러시아가 유엔헌장 수정없이 타이완과 소련의 지위를 이어받아 상임이사국이 된 것은 국제사회의 정치적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다만 현재 중국·러시아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 정도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직접적인 도전자가 없다는 점에서 상임이사국 지위 변경의 현실성이 크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유엔헌장에 대한 분석 및 견해가 나오는 것은 그 실현 가능성과 별개로 이런 논의 자체만으로도 대러 압박의 효과가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현재 안보리 개혁 방안으로 상임이사국의 확대에 대한 여러 주장도 제기됐다.
먼저 브라질, 독일, 인도, 일본이 포함된 일명 유엔 내부에서 G4로 불리는 국가들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합류이다. 여기에 아프리카연합까지 더해 모두 6개의 신규 상임이사국을 추가하면서 안보리 이사국 정수도 모두 21개로 늘리자는 주장이 나왔다.
아울러 한국을 비롯해 이탈리아, 스페인, 캐나다, 멕시코 등 단순한 상임이사국 확대 대신 정기투표를 통한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확대를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비록 2년이란 짧은 임기에 거부권도 없는 비상임이사국이지만 국가 수를 확대하면 상임이사국 견제에 현실적은 대응 방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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