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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준현 경제부 기자 |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한국형 중산층(2021년 4인가구 기준)'은 8억 4000만원 상당의 수도권지역 30평대 아파트(KB부동산 2022년 6월 통계 기준)를 갖춰야 한다.
지난해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발간한 '2022 중산층 서베이'(30~50대 1140명(남 572명, 여 568명) 대상 설문조사)의 한 내용이다. 8억 4000만원은 통계상 중산층의 현실치인 3억 9000만원보다 4억 5000만원이나 높은 값이다.
연구소는 "소득기준으로 한국형 중산층을 정의할 수 없다"며 "소득보다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자산'이 중산층의 계층인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우리나라 국민이 바라보는 중산층의 기준이 매우 높다는 게 연구소의 설명이다.
8억대 자가 소유는 과연 중산층의 '표준'일까. 은행권에서는 높은 집값을 정상화하지 않은 채 대출규제를 완화하면서 실수요자들이 무리한 투자에 뛰어들게 한다고 평가한다.
대표적으로 정부가 대출만기 최장 50년의 특례보금자리론을 내놓으면서 대출 원리금 상환에 대한 두려움은 다소 옅어졌다. 30년 만기를 기본으로 하던 주담대 시장에 40년 만기가 도입된 게 지난 2021년 7월이었는데, 채 2년도 되지 않아 최장 50년까지 옵션이 늘어났다.
만기를 늘림으로써 대출자가 매달 부담하는 원리금을 줄이겠다는 게 정부의 의도였지만, 실수요자는 만기 확대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 우회수단으로 사용해 대형 평수 및 서울지역 아파트 영끌 매수로 활용했다. 오히려 투자자들이 빚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게 만든 것이다.
금리추이도 가계대출 누증의 요인으로 꼽힌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취임 직후 원칙대로 금리를 올리며 '거품 걷어내기'에 나섰지만, 올해 1월 0.25%포인트 인상을 끝으로 전날까지 6연속 3.50% 금리동결 조치를 이어오고 있다. 늘 영끌족에게 금리인상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지만, 실상 금리는 올리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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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발간한 '2022 중산층 서베이'(30~50대 1140명(남 572명, 여 568명)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형 중산층(2021년 4인가구 기준)'은 8억 4000만원 상당의 수도권지역 30평대 아파트(KB부동산 2022년 6월 통계 기준)를 갖춰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사진=김상문 기자 |
상황이 이렇다보니 최근에는 결혼도 하지 않은 남녀커플이 주택가격의 90%까지 주담대와 신용대출을 일으켜 레버리지로 집을 매수하고, 이를 월세로 내어주는 게 어떻겠느냐는 내용이 한 부동산유튜브의 상담소재로도 나온다.
오랜 고금리 현상이 언젠가 막을 내릴 것이고 집값은 과거 수준으로 회복할 것인데, 매수 기회를 놓치면 또다시 '벼락거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질문이다. 정부는 대출규제를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이라는 명분으로 풀어줬지만, 정작 시장에서는 이를 '실거주'보다 '투자'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과거 2채를 살 수 있었던 액수만큼 영끌대출을 일으켜야 겨우 한 채를 마련할 수 있다는 요즘인데, 대출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수요자들이 바라보는 이상적인 집값의 기준도 꽤 높아진 모습이다.
은행권에서는 이러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최근 가계부채 급증을 이끌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정부 인식은 정반대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민간에서 하는 50년짜리 만기 대출은 집이 있는 사람에게도 50년 만기로 대출을 내주고 연세가 있어도 50년 만기로 변동금리로 대출해 줬다"며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강력 비판한 바 있다. 은행이 대출자의 기대소득을 무시한 채 무분별하게 50년 주담대를 공급하면서 가계부채 급증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시각이다.
문득 연령별 적정 대출만기에 대한 기준이 궁금해진다. 당국의 조치로 중장년층은 변동금리형 50년 주담대를 받을 수 없게 됐지만, 월 원리금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30·40년 만기 주담대는 여전히 DSR 조건 등에만 부합하다면 받을 수 있다. 가계부채는 대출기간과 무관하게 은행들이 금융당국의 가이드에 따라 대출을 내어준 결과물인 것이다.
그동안 민간 연구소를 비롯 전문가들은 DSR 규제 정상화 및 시장경고 강화 등을 가계부채 해결안으로 내놨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금융기관 자율에 맡겨진 주담대 대출자 만기구조 결정을 당국의 규제체계에 따르도록 개편하고, DSR 규제를 '상환능력범위 내 대출'이라는 취지에 걸맞게 정상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통화당국에 대해서는 "당분간 주택구입 및 위험자산투자가 수익성 차원에서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는 시장 경고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말 은행 가계대출 잔액이 8월 대비 4조 9000억원 증가한 1079조 8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가계부채 누증은 금융당국의 정책 오판과 국민들의 높은 눈높이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라는 의구심이 든다.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이후인 지난 18일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며 "어떠한 비판에도 변명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여당의 선거 패배를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내년도 총선을 의식해 정부가 '친서민' 정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 반, 우려 반'의 시각도 존재한다. 이에 은행권에서는 정부가 표심을 얻기 위해 은행을 방패삼아 금융정책 기조를 또 번복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국민은 이상보다 현실을 직시하고, 정부는 원칙에 따른 정책을 펼침으로써 비정상의 정상화를 유도해야 할 때다. 급변하는 대내외 경제상황에 원칙 없이 흔들리는 금융·통화정책은 왜곡된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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