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최근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들과 간담회를 가지고 새로운 지배구조 모범관행을 발표했다. 은행지주에서 최고경영자(CEO)나 사외이사를 선임할 때 경영진의 참호구축 문제나 폐쇄적인 경영문화가 나타나지 않도록 다양성을 확보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전문성을 담보하지 못한 다양성 제고가 지주의 경영실적 악화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각사가 중장기 경영전략에 부합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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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감독원이 지난 12일 '은행지주·은행의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을 내놓으며 이사회 구성을 다양화하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전문성을 담보하지 못한 다양성 제고가 지주의 경영실적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사진은 4대 은행지주./사진=각사 제공 |
26일 한국금융연구원이 펴낸 금융브리프포커스 '은행지주 이사회 다양성에 대한 고찰'에 따르면 최근 기업 이사회의 다양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국내 은행 및 은행지주에서도 이 같은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금융감독원은 지난 12일 '은행지주·은행의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을 내놓으며 이사회 구성을 다양화하라고 주문했다. 새 모범관행은 △사외이사 지원조직 및 체계(6개 원칙) △CEO 선임 및 경영승계절차(10개 원칙) △이사회 구성의 집합적 정합성·독립성 확보(9개 원칙) △이사회 및 사외이사 평가체계(5개 원칙) 등 '4개 테마, 30개 원칙'을 담고 있다.
특히 이사회 구성은 이사의 전문분야, 직군, 성별 등과 관련해 은행별 영업 특성에 따라 중장기 전략, 가치 등을 고려하고, 전문성 및 다양성 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원칙을 담았다.
아울러 세부 기준으로 특정 전문분야, 직군, 성별, 연령, 사회적 배경 등을 고려해 중장기계획을 마련하라고 제시했다. 또 전문성 및 다양성 확보 정책 및 목표 등을 상시후보군 구성 분야, 후보군 수, 후보군 평가 등 관리 정책과 연계하라고 당부했다.
이 원장은 "은행지주 이사회는 지주 그룹의 경영전략과 리스크관리 정책을 결정하고, 주요 경영 현안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지주 내 그 어떤 기구보다 중요한 곳이다"며 "이사회는 자칫 단기 성과에 매몰되기 쉬운 경영진이 경영 건전성과 고객 보호 등에 소홀하지 않도록 통제·감독하는 한편, 장기적인 시야에서 금융회사가 나아가야 할 경영전략과 방향을 제시하는 책무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 '소유-지배 분산기업'으로 불리는 은행지주에서 CEO나 사외이사 선임시 경영진의 참호구축 문제가 발생하거나, 폐쇄적인 경영문화가 나타날 수 있다. 이에 선임 과정에서의 절차적 정당성과 공정성을 강화하라는 당부다.
참호구축은 소유 분산기업에서 현직 CEO가 자신이 통제 가능한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해 참호를 구축하는 것을 뜻하는데, 학계에서는 이를 '주인-대리인 문제'의 사례로 꼽고 있다. 사실상 이사회 멤버를 다양화해 경영진의 일방적 행보를 견제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당국이 추구하는 '다양성 제고'가 경영감독 및 경영의사결정에서의 다양한 관점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권흥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지주 이사회의 다양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원칙과 세부 기준을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에 담았다는 점은 해외 감독당국이나 일반적인 기업 지배구조 관련 지침과 부합한다"면서도 "다양성 제고의 목표가 다양성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경영감독 및 경영의사결정에서 다양한 관점을 반영한다는 점을 명시하지 못했다는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바젤위원회 은행부문(Basel Committee on Banking Supervision)은 은행 이사회가 집합적으로 기능·다양성·전문성 측면에서 은행의 규모·복잡성·위험프로파일에 상응하는 자격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이사회는 집합적 정합성을 평가할 때 관점의 다양성을 제고할 수 있는 관련 분야의 지식 및 경험을 갖춰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이사 개인이 아닌 이사회 전원이 총체적으로 금융회사 경영에 적합한 전문성을 갖춘 이사로 구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 기업지배구조 헌장에는 이사회 및 고위경영진 임명 및 승계가 실력주의 및 객관적 조건에 따르며, 이러한 맥락에서 성, 사회적 배경, 인종 등의 다양성을 증진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해외 사례는 관점의 다양성을 확보하는데 목적을 두면서, 전문성이 우선돼야 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금감원이 최근 발표한 모범관행과 차별화된다는 지적이다.
더 큰 문제는 당국의 새 조치가 이사회 멤버의 다양성 확보에만 매몰되도록 유도한다는 점이다. 권 연구위원은 다양성 제고를 통한 긍정효과 실증분석이 있다면서도, 전문성을 담보하지 못한 다양성 제고가 자칫 경영실적 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고 우려했다.
구체적으로 한 연구에서는 '성별 할당제' 등 이사회 구성에 대한 강제적 규제가 경험이 적은 이사의 임명 등으로 이어져 경영성과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결론을 내놨다. 아울러 할당제가 사외이사 풀을 확보하지 못하는 회사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에 권 연구위원은 국내 은행지주가 각사의 중장기 경영전략과 부합하게 다양성 기준 및 다양성 제고 로드맵을 수립하고, 이사회의 전문성 확보를 전제로 다양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권 연구위원은 "국내 은행지주는 각사별 중장기 경영전략과 부합하는 다양성의 식별, 다양성 기준 수립, 중장기 다양성 제고 로드맵 등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이사의 임면은 실력주의 및 객관적 조건 등 경영감독 및 경영의사 결정의 효과 제고를 최우선 기준으로 하며, 다양성은 이사회 기능을 강화하는 맥락에서 제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양성 기준 및 제고 로드맵이 실효성 있게 추진되기 위해 사외이사 후보군 구성, 사외이사 평가·임면이 이들과 합치하는지 정기적으로 검토 및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다양성을 갖춘 사외이사의 임면이 은행, 금융, 경영 관련 전문성을 갖춘 이사 수의 감소로 이어지지 않도록 사외이사 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현재 은행지주 이사회 규모가 필요한 전문분야 및 다양성 확대를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지에 대해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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