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준희 기자]“그렇게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엄마와 할머니, 그리고 나보다 앞서 아이를 낳았던 집안의 여성들에 대해 생각했다. 선조들의 이야기를 알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바로 그때였다.” (본문 12쪽 중에서)
‘고등학생이 선정한 르노도상’, ‘미국 공쿠르상’, ‘엘르 독자 선정 문학상’ 외 다수의 문학상을 휩쓴 안느 브레스트의 베스트셀러 ‘우편엽서’가 국내 독자들을 찾아왔다.
안느 브레스트는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 ‘아버지의 딸’과 ‘사강 1954’ 등으로 프랑스 문단에서 호평을 받았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어디서든 파리지앵이 되는 법’을 공동 집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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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수의 문학상을 휩쓴 안느 브레스트의 베스트셀러 '우편엽서'가 국내 독자들을 만난다./사진=사유와 공감 |
저자는 ‘우편엽서’를 통해 홀로코스트에 희생된 가족들의 이름이 적힌 익명의 엽서를 중심으로 100여년에 이르는 가족의 역사를 파헤친다. 더불어 유대인으로 표상된 ‘사회적 이방인’으로서 사는 것이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자문한다.
‘우편엽서’는 저자인 안느 브레스트와 그의 어머니가 오랜 시간에 걸쳐 조사한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됐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가족사를 조사해 쓴 부분이 상세히 묘사됐다. 소설 중간에는 마르셀 뒤샹, 장 르누아르와 같은 저명한 예술가들과 사뮈엘 베케트와 같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로 활동한 역사적 인물들도 등장한다.
이는 마치 역사 속 숨겨진 비밀을 듣는 듯한 흥미를 유발하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임을 느끼게 해준다. 실화 기반 소설의 장점 중 하나는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독자에게 한층 더 깊이 있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우편엽서’의 저자도 이 소설을 통해 홀로코스트와 유대인 가족사 사이에서 역사적인 줄기를 뻗어나가는 유의미한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우편엽서’는 프롤로그와 총 4부의 구성을 두고 있다. 프롤로그에서는 ‘렐리아’와 ‘안’이 엽서를 발견해 조사를 시작하기까지 과정을 그려냈다. 1부 ‘약속의 땅’에서는 과거 이야기가 시작된다. 1918년부터 1942년까지 엽서 속 네 인물을 중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2부 ‘유대 회당에 다니지 않는 유대인 아이의 기억’에서는 ‘안’의 딸 ‘클라라’가 학교에서 아이들이 유대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 것을 계기로 ‘렐리아’와 ‘안’이 함께 엽서에 대해 조사하게 되는 과정을 그려냈다.
3부 ‘이름들’에서는 ‘안’과 그녀의 동생 ‘클레르’가 주고받은 서신이 등장한다. 유대인의 후손으로서 느끼고 생각해왔던 점들을 주고받았다. ‘안’은 ‘클레르’와 자신에게 히브리어로 된 두 번째 이름을 거론하며 이름이 가진 힘에 대해 생각한다. 4부 ‘미리얌’에서는 마침내 그들이 엽서의 숨겨진 비밀을 알아낸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구성을 보며 우리는 과거의 조상들에 대해 조사하며 알아가는 후손과 미래의 후손들에 대한 염원을 가진 채 엽서를 쓴 조상의 진정성과 간절함을 느낄 수 있다.
‘우편엽서’에는 100여년의 시간이 담겨 있다. 러시아 독재 권력에 의해 고향에서 쫓겨난 유대인 가족이 잔인하고 가혹한 반유대주의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펼쳤던 한 세기가 그려져 있다. 6세대에 이르는 유대인 가족을 연결해 준 것은 우편엽서 한 장이었다. 누군가가 잊혀가던 네 명의 이름을 엽서에 적어 보내 잊으면 안 되는 역사를 다시 한번 일깨웠다.
이 길고 긴 유대인 가족의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느낀다면 홀로코스트라는 파괴적인 역사를, 또 아직 이 시대에서 이방인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게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한 면에는 오페라 가르니에의 사진, 다른 한 면에는 아우슈비츠에서 죽은 가족 네 명의 이름이 있는 우편엽서. 이 우편엽서 한 장은 어쩌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누군가에게는 화려한 기억으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고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양면의 모습과 닮아있다.
저자는 우리에게 이 소설을 통해 ‘사회적 이방인’으로서 사는 것이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묻는다. 멈추지 않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세상에는 잊히면 안 되지만 쉽게 잊히고 마는 일들이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우편엽서’에서 다룬 라비노비치 유대인 가족의 험난한 가족사도 그 중 하나다. 쉼 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기억해야 할 일들을 곱씹으며 진정한 삶의 의미를 성찰해 보는 것은 어떨까.
[미디어펜=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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