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동규 건설부동산부 차장
[미디어펜=성동규 기자]영국의 수학자이자 작가인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이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이라는 필명으로 저술한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후속작 격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주인공 앨리스는 체스판과 닮은 거울나라로 모험을 떠난다.

거울나라에서 만난 붉은여왕은 앨리스에게 제안한다. "원한다면 하얀여왕의 졸을 할 수 있어. 두 번째 칸에서 시작하면 될 거야. 네가 여덟 번째 칸에 도착하면 여왕이 되는 거지" 얼결에 게임에 참여한 앨리스는 붉은여왕과 함께 달린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달려도 달려도 나무와 주변의 풍경이 전혀 바뀌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주변의 것들을 앞서나가지 못했다.

앨리스는 "달리고 있지만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자 붉은여왕이 대답한다. "제자리에 머물기 위해서는 온 힘을 다해 뛰어야 한단다. 다른 곳으로 가려면 지금보다 최소한 두 배는 빨라야 하지"

미국의 진화생물학자인 밴 베일런(Leigh Van Valen)은 동화 속 이 장면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는 계속 발전하는 경쟁 상대에 맞서 끊임없이 변화하지 않는 주체는 결국 도태된다는 가설을 세웠다. 베일런은 이런 현상을 '붉은여왕 효과'라고 이름 붙였다. 

   
▲ 부산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열심히 달리지만, 제자리를 벗어날 수 없는 앨리스의 모습은 현재 국내 건설산업이 처한 현실과 많이 닮아있다. '10대 건설기업 원가율 95%…저가 현장 준공 영향…', '매출 늘어도 웃지 못하는 10대 건설사…' 두 기사는 2014년과 지난해 출고됐다.

과거나 현재나 한 치도 변한 게 없다. 건설산업을 위기로 몰아넣는 최대 악재는 여전히 높은 원가율이다. 원가율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건설사들이 디지털 전환에 등한시했던 탓이다. 노동집약적 인력 구조를 극복하고 생산성을 향상시키지 않는 한 위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2020년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건설산업의 디지털화가 1% 진전될 때마다 생산성이 0.81%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건설현장의 디지털화율(국토교통부 조사)은 6%로 농업(10%), 제조업(28%)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이렇다 보니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은 건설산업의 디지털 혁신을 제조업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면 생산성이 25% 향상되고 양질의 일자리 3만 개 이상이 창출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다. 점차 강화되고 있는 환경규제, 수주 물량 다변화, 예상치 못한 건설 원자재 가격 상승, 근로자 안전 문제 등으로 대표되는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디지털 전환이 절실한 상황이다.

따지고 보면 이는 새삼스러울 게 없다. 이미 수많은 자료를 통해 제언 됐던 내용이다. 우리 건설사들 역시 디지털 전환에 중요성을 모를 리 만무하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여전히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는 게 진짜 위기의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든다.

디지털 전환의 속도가 경쟁력이자 생존의 열쇠가 된 지 오래다. 우리 건설사들은 거울나라 앨리스와 같이 체스판 마지막 줄에 도달해 '여왕'이 될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졸'에 계속 머물러 있을지 하루 빨리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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