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방방곡곡서 조합-시공사 간 공사비 인상 갈등
최근 원가율 급등 탓에 지어도 사실상 남는 게 없자
계약 해지당해 손해배상 받는 게 이득이라는 분위기
- 조합서 새로운 시공사 찾기 어려워…갑을 관계 바뀌어
[미디어펜=성동규 기자]원자재 가격, 물가 상승 등 공사비 인상으로 인해 정비사업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조합에선 계약 해지라는 강수를 두고 있으나 사업을 완료해도 사실상 남는 게 없는 시공사는 이를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다.

10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홍제3구역재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은 이달 말 개최할 예정인 총회에 시공사인 현대건설과의 계약을 해지하는 안건을 상정할지 마감재 등급을 낮춰 공사비를 줄일지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조합은 지난해 9월에도 시공사 계약 해지 안건을 총회에 부치려 했다. 현대건설은 지난 2020년 3.3㎡당 512만원 수준의 공사비로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2022년 687만원, 지난해 898만6400원 등 3년 사이 75.5% 인상된 공사비를 제안했다.

   
▲ 부산의 한 건설 현장.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1년여간 조합과 현대건설은 공사비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다가 총회 직전 큰 틀에서 합의를 이뤄내며 안건은 상정되지 않았다. 현대건설이 올해 다시 3.3㎡당 830만3000원의 공사비를 제시하자 조합은 이를 거부한 상태다. 

조합은 600만원 후반대 수준에서 계약을 요구해 양측이 접점을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 전국의 정비사업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는 공사비 증액과 공사 기간 등의 의견 차이로 GS건설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새로운 시공사를 찾고 있다.

송파구 잠실 진주아파트(잠실래미안아이파크) 조합원들은 조합에서 지난달 16일 삼성물산·HDC현대산업개발 시공단이 제시한 공사비 인상(3.3㎡당 510만원→823만원)안을 그대로 받아들이자 조합장 해임을 추진 중이다.

조합장이 해임될 경우 시공사 역시 교체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새 시공사를 찾는 과정이 순탄치 않다는 점이다. 최근 시공사들은 수익성이 확보되지 않은 사업장에 아예 입찰하지 않거나 입찰에 참여했다가도 포기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더 나아가 이미 수주한 사업마저 발을 빼려고 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차라리 조합 의결로 시공권을 박탈당하기를 내심 바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받는 게 더 이득이라는 것이다.

실제 지난 9월 서초구 반포아파트3주구 재건축 조합은 시공자 해지에 따른 손해배상금 164억원을 HDC현새산업개발에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공사비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공사 계약 해지한 조합에 귀책사유가 있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올해 1월에는 제주 이도주공2·3단지아파트 재건축 조합이 대법원까지 법정 다툼을 이어간 끝에 HDC현대산업개발와 한화에 손해배상금 60억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시공사와 공사비 협상을 벌여 조합원들의 추가 분담금 부담을 최소화하는 게 조합의 역할이다"면서 "하지만 요즘처럼 공사비가 하루가 다르게 뛰는 시간이 즉 돈인 시기에서는 적정 수준에서 합의하는 게 더 이득"이라고 짚었다.

그는 이어 "사업이 중단되거나 지연되면 조합원들의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면서 "과거와 달리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엄포도 이제는 협상에서 그다지 효과적인 카드가 아니다. 갑을 관계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