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조위원장 야당 인사 vs 법리문제 조항 삭제 등 여야 양보
유가족 손배 소송 관련 정부 "1심 판결, 항소 않을 생각"
영수회담 이틀만에 나온 합의…尹, 총선 패배 후 첫 변화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이태원 참사 특별법'(10·29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및 피해자 권리 보장을 위한 특별법)이 2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지난 1월 30일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지 93일만이다.

이태원 압사 사고는 지난 2022년 10월 29일 오후 22시 15분경 일어났다. 304명이 사망한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 및 192명이 사망한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의 인명 사고(159명 사망-195명 부상)다.

이 사고에 대한 유가족의 입장은 일관적이었다. 바로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이번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한 합의는 여야가 각각 한발씩 양보했다지만, 실제로는 민주당이 더 큰 양보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유가족 입장을 최대한 대변했던게 민주당 법안이었고, 이를 일부 후퇴시킨 합의이기 때문이다.

원래 민주당은 유가족 입장을 받아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직권 조사 권한과 압수수색 영장 청구 의뢰권을 주장해왔지만, 이번 합의에서 국민의힘측 요구를 수용해 삭제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1대1로 만난 영수회담에서도 이에 대해 '법리적 문제가 있을 부분'이라고 언급하면서, 사실상 '독소조항'이라고 못을 박은 내용이다.

   
▲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2024년 1월 9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표결에 앞서 퇴장한 가운데, 재석의원 177명 중 찬성 177인으로 통과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박주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1일 국회 합의사항 발표 자리에서 이에 대해 "'독소 조항'이라는 여당의 주장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지만, (이태원 특별법) 합의 처리를 위해 수용하겠다는 유가족분들의 뜻에 따라 삭제를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유가족 협의회는 이날 오후 특별법이 본회의를 통과한 직후 기자들을 만나 국민의힘을 겨냥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하루만에도 할 수 있는 일을 왜 그렇게 외면하고 돌아보지 않고 당리당략 정쟁으로만 끌어서 1년 6개월 간 유가족들을 길거리에서 방치하고 내버려뒀는지 정말 원망스럽다"고 밝혔다.

유가족들은 이날 "이게 마지막은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더 험난한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다"며 "진상 규명이 되기 위해 특별법을 만들었지만, 정말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을 하기 위해서 특조위가 제대로 된 조사를 통해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수 있기를 손 꼽아 기다린다"고 강조했다.

지난 1월 26일,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4일 앞둔 당시 박찬대 민주당 최고위원도 이에 대해 "159명이 길에서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사건에 대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특히 선진국인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졌는지 진상을 철저하게 조사하자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를 납득하거나 이해하기에 어렵다"고 아쉬워 했다.

반면 국민의힘이 양보한건, 특별조사위 구성에 있어서 '여야 협의를 거쳐 1명 추천'으로 바꾸기로 한 민주당측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에 대해 이양수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1일 국회 발표 자리에서 "사실상 조사위 운영권을 (민주당에) 내준 것"이라며 "국민의힘이 크게 양보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국회의장이 야당이 원하는 인사로 위원을 추천하면 특조위가 여당 4명 및 야당 5명 구도로 꾸려지고, 이렇게 되면 특조위가 민주당 뜻대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이번 4.10 총선에서 확인된 민심을 살펴 법안 자체를 반대했던 국민의힘이 일부 양보에 나서고, 민주당이 유족들의 뜻에 따라 큰 폭의 양보를 해서 합의 통과된 '협치의 첫 단추'다.

대통령실 또한 오랜만에 들려온 여야의 합의 소식에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해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10개월간 총 9건의 거부권을 행사했다. 1년 넘게 끌어오던 여야 대치 국면이 이번 합의로 다소 풀릴 가능성이 제기됐다.

다만 문제는 이제부터다. '채 상병 특검법'으로 불리는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안'이 2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단독으로 국회를 통과해서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야당의 의사일정 변경과 단독 강행 처리에 항의하며 표결에 불참한 가운데,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은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채 상병 특검법'을 표결에 부쳐 재석 168명 전원 찬성으로 가결시켰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합의로 이뤄진지 단 하루 만에, 채 상병 특검법 처리에서 충돌이 일어나 여야 간 갈등이 재점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