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지난 30일 22대 국회가 시작한 가운데, 정쟁 중인 여야가 공통으로 동일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해 주목받고 있다. 바로 '지구당 부활'이다.
지구당은 1962년 총선 선거구 단위로 지역 의견을 수렴하자는 취지로 설치한 중앙당 하부 조직으로, 2002년 일명 '차떼기'라 불리는 불법대선자금 사건이 벌어진 후 폐지 여론이 일어났고, 2004년 일명 '오세훈법'으로 불리는 정당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폐지됐다.
30일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김영배 의원은 각각 지구당 부활을 목적으로한 정당법,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나섰다. 여야가 합심해 같은 내용의 법안을 낸 것으로, 별다른 이슈가 불거지지 않는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여야 합의로 통과되면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이 행사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지구당 부활'법안은 여야 합의로 통과될 1호법 후보로 꼽힌다. 폐지 20년 만에 부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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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5월 28일 오후 국회에서 21대 마지막 본회의가 열리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지구당이 부활하면 바뀌는건 한두가지가 아니다. 현재 시도당 아래 정당 조직은 사무실의 설치와 운영이 금지되어 있지만, 총선 지역구마다 지구당 설치와 사무실 운영이 허용된다.
또한 현재는 국회의원만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지만, 지구당 후원회를 두고 지구당이 직접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지구당마다 1~2인 이내로 유급 사무직원을 채용할 수 있다. 현재는 시도당까지만 직원을 채용할 수 있다.
양 법안의 디테일은 다소 차이가 있다. 윤상현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각 지구당이 연간 최대 1억 5000만원까지 모금할 수 있고 사무직원을 2명까지 둘 수 있어 20년 전(2억원-2명)과 다르지 않다. 반면 김영배 의원의 법안은 연간 모금 한도액을 5000만원으로 잡았고, 사무직원을 1명으로 제한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23일 부산 당원 행사에서 지구당 부활에 대해 "중요한 과제"라고 언급했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치 개혁이라고 생각한다"고 높이 평가했다. 국민의힘 원외 당협위원장들은 한동훈 전 위원장이 글을 올리기 2시간 전에 지구당 부활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을 정도다.
현재 여야 정쟁이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이 '지구당 부활' 법안은 가장 먼저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외부에서 바라보기에는 지구당을 당 하부조직의 강화 구심점으로 삼게 될 전망이다.
관건은 앞으로다. 20년 전 폐지될 당시에 불거졌던 '돈 문제', 일종의 병폐가 재현될 우려가 높기 때문에 법개정을 통해 그 부작용을 사전에 막아야 한다. 원내 1~2당인 민주당과 국민의힘에서는 이미 관련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양당의 속내는 다르게 읽힌다.
국민의힘에서는 당권 주자들을 중심으로 원외 표심을 끌어모으기 위해 경쟁적으로 밝히고 있고, 민주당에서는 이번 국회의장 선출에서 드러난 강성 당원들의 분노를 달래는 용도로 쓰이는 분위기다.
이번 총선에서 여당의 참패로 전국 지역구 254곳 중 원외 위원장이 현역 의원보다 많은 상황이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국민의힘이 이번 8월 전당대회를 치를 때 원외 위원장들의 표심을 확보하기 위한 '구애'라는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이 단기적으로 이번 지구당 부활을 토대로 향후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강성 당원들을 달래고 조직력을 결집시키면서 험지를 공략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민주당 내에서는 지구당 부활이 돈 문제 등 금전적 스캔들을 일으켜 검찰발 사법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걸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전 위원장에 이어 나경원 의원도 이날 CBS 라디오에서 지구당 부활에 대해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원외 위원장으로 활동해 보니깐 정치자금 모금이 문제다, 우리(원외)는 못 한다"라며 원외 표심에 호소했다.
안철수 의원도 기자들을 만나 "지구당은 아니더라도 지역위원장들이 사무실도 열고 후원금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바람직하다"고 힘을 보탰다. 법안을 발의한 윤상현 의원 또한 이날 워크숍 자리에서 기자들을 만나 "돈 문제는 선거관리위원회가 투명하게 관리하면 된다"며 "기성 정치인들이 (신입의) 진입 장벽을 높여놓았다"라고 안타까워 했다.
정작 향후 지구당을 부활시키더라도 기존 병폐를 어떻게 예방하고 정치신인의 등용문으로 잘 쓰일지 주목된다. 결과를 속단하긴 이르다. 여야가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예방적 조치와 여건을 잘 마련해야 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