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1945년 이후 수립된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지속될 것인지 아니면 생명력을 상실할 것인지, 지금 세계질서가 근본적인 전환기를 맞았다는 전문가 진단이 나왔다.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이 가장 큰 이유로, 미국과 더불어 자유주의 안보질서에서 성장해온 한국의 외교전략을 점검해볼 때다.
전재성 서울대 교수는 지난달 15일 (사)플라자프로젝트와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가 공동주최해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한국의 안보 상황과 북한 핵위협’ 세미나에서 “지금 세계의 안보질서는 전환기를 맞았다. 북핵 문제도 전혀 다른 차원으로 들어갔다”며 “한반도 상황을 변화하는 세계질서 속에서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 교수는 “그동안 세계는 힘과 무력에 의한 질서보다 다자주의적 합의에 의한 자유주의 안보질서를 유지해왔지만, 80년만에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벌어지면서 기존 질서에 큰 변화를 맞았다. 앞으로 30년 이상 지속될 수 있는 새로운 환경에 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이스라엘 전쟁 모두 주체들이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될 정도로 국제법과 전쟁수행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며 “앞으로 힘에 의한 국제질서로 변할지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전략을 바꿀 필요성이 커지는 것이다. 아니면 자유질서가 다시 자리잡을지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 와중에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될 것”이라며 “만약 미중 전략경쟁의 양상이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벗어날 경우 북핵 문제도 전혀 다른 환경에 처하게 된다. 중국이 북핵을 용인한다든지, 러시아처럼 기존 규범을 어기는 경쟁을 하게 되면 동아시아 환경도 전혀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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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중 갈등. 정연주 제작, 사진합성 일러스트./사진=연합뉴스 |
전 교수는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우리의 외교전략이 중요한 이유에 대해 “우리는 미국의 동맹국이면서도 중국, 러시아와 밀접한 경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라며 “게다가 우리를 포함한 세계 120개국 이상이 중국의 최대 교역파트너인 만큼 미국 대중전략의 엔드 스테이트(최종 상태)도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미국의 동맹현대화 전략에 북중러 협력이 맞서는 모양새지만, 북중러 협력이 한미일 협력과 대칭적이라고 보기 힘들다”며 “권위주의와 독재국가들간 협력은 이념이 아닌 이익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 지도자 개인, 지배정당의 국내정치 상황을 반영한 이익이 주된 동기이므로 구조적인 영속성을 가진 협력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그는 오는 11월 미국대선을 앞두고 남한의 핵무장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에 대해선 먼저 “이번 대선이 남북전쟁 이래 가장 중요한 선거란 말이 있듯이 내부 분열이 심각하고, 그 만큼 미국 외교정책이 달라질 확률도 높다”고 진단했다.
이어 “하지만 만약 트럼프가 재선되더라도 4년으로 끝나는 문제"라며 "그래서 미국이 없는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가능할지, 또 우리나라를 포함해 핵무장 국가가 더 많이 나오는 것이 세계평화를 위해 옳은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한국이 북한의 핵공격을 받았을 때 미국이 반격하기 어렵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도 “만약 미국이 반격하지 않으면 동맹이 무너지는 것인데, 미국이 과연 그렇게 할지 쉽게 단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북한이 핵개발을 하는 이유에 대해 중국에 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한 측면이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런 한편, 북한이 핵투발 수단을 다양화하고 있으며 수백여발의 핵탄두 확보로 사실상 전쟁 수행 능력을 갖출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토론자로 나선 한설 예비역 육군 준장은 북핵 개발에 대해 “군사적 문제가 아니라 외교적 생존 문제이다. 지나치게 공세적으로 막을 필요가 없고, 정치 영역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면서 북한이 핵무기를 가진 이유에 대해 "중국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한 측면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이 핵개발에 나섰을 시기가 냉전 이후 중국과 소련 모두에 버림받았을 때"라며 "당시 북한으로선 핵무기 개발로 독자생존할지,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남한과 협력할지 두가지를 기회로 삼았는데 우리가 그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또 “과거 고난의 행군 시절 인민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핵무기 개발을 한 북한이 쉽게 핵포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최근 북한이 남한을 적대적 교전국으로 설정한 것은 문재인정부에 대한 정확한 평가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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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플라자프로젝트와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가 공동주최한 ‘한국의 안보 상황과 북한 핵위협’ 세미나가 15일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리고 있다. 2024.6.15./사진=플라자프로젝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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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 핵무기의 위험성에 대해 “앞으로 7차 핵실험을 한다면 전술핵탄두 화산-31형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조기경보체계 완성을 위해 위성을 지속적으로 발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북한이 핵투발 수단을 다양화하고 있는 것은 우리 미사일 방어체계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가령 8종의 투발수단이라면 전술핵탄두 300여발을 구비해놓고 전쟁 수행을 대비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연구위원은 “우리의 억제전략을 보면 3축체계 등 독자적 능력, 한미동맹을 통한 확장억제 확보의 두가지 축으로 대응해왔다”며 “정확히 말하면 이 두 가지 수단은 개발억제가 아니라 공격억제용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으니 공격억제는 성공한 것”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따라서 앞으로 북핵개발억제는 외교적으로 해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 학자들도 만약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미국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에 대해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다"며 "그렇다면 미국이 북한에 핵무기를 사용한다고 할 때 과연 우리국민들이 모두 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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