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준모 기자]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개인 자금과 공금 등 21억여 원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기소된 비서 이모씨(34)에게 검찰이 징역 8년을 구형했다.
30일 검찰은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배성중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씨의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위반(사기), 사문서 위조 등 혐의 사건 결심공판에서 “범행이 매우 중대하고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며 이같이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번 사건은 세간에 알려진 초기에는 직원의 범행 방식과 과감성에 관심이 집중됐지만, 최근 재계에서는 거액의 현금이 이체됐음에도 이를 수개월 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아트센터 나비의 내부 시스템 문제와 불성실 경영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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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사진=연합뉴스 제공 |
재계에서 나비의 경영에 관해 의혹을 제기하는 부분에 대해 살펴보면, 우선 휴대폰 문자 한 통에 공금 5억 원을 개인 계좌로 이제하는 것이 가능한가? 라는 문제다. 특히 노 관장을 사칭한 휴대폰 문자메시지만으로 미술관 재무담당자 A씨가 현금 5억 원을 개인 통장에 입금한 사실에 대해서 재계는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한편으론 상여금 5억 원 송금은 실제적으로 5억 원이 아닌 10억 원이라는 주장도 있다. 5억 원이 상여금으로 입금이 되려면 법인 입장에서는 세금을 고려해 약 10억 원을 경비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계좌이체나 대출 건과는 달리 이 때 피해를 입은 것은 노 관장이 아닌 경비 처리를 한 아트센터 나비이므로, 결국 횡령 금액은 5억 원이 아니라 공금 10억 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보이스피싱 방지 등을 이유로 거액의 금액을 이체하는 데는 많은 절차와 확인이 필요하다. 그만큼 꼼꼼한 확인이 필수라고 볼 수 있는데, 경찰 등에 따르면 당시 이씨는 A씨에게 “관장님의 세컨드 폰이라며 번호를 입력해두라”며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고, 며칠 뒤 해당 번호로 노 관장을 사칭해 “빈털터리가 돼서 소송자금이 부족하니 상여금으로 5억 원을 송금하라”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A씨는 이씨가 관리하는 통장으로 요청액 전액을 송금했다.
공익법인은 국가보조금, 기부금 등을 통해 운영되는 만큼 자금의 쓰임에 대해 직원의 ‘교통비’까지 공시자료에 기입할 정도로 꼼꼼하게 관리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물며 공금 5억 원을 개인 계좌로 입금하라는 ‘횡령’에 가까운 지시를 받았다면 최소한 의심이나 확인을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A씨는 “관장의 말투를 따라해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고 진술했으며, 별다른 확인 절차 없이 공금 5억 원을 개인 계좌로 입금했다.
이와 함께 재계에서 의심을 하는 부분은 공익법인에서 상여금(보너스) 5억 원 지급이 가능한지 여부다. 이는 이사회 절차를 무시해야 가능하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한 목소리다. 한 마디로 상식에서 너무 벗어났다는 게 문제다.
노소영 비서 이씨는 관계자를 속이기 위해 인건비인 ‘상여금’을 명목삼아 A씨에게 5억 원 송금을 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도 A씨는 절차를 무시한 행동을 보였다. 공익법인은 공익법 제5조에 따라 상근임직원에게 승인된 보수만 지급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사업계획에 연간 인건비 지급 기준을 포함한다. 이 역시 법인세법에 따라 이사회 결의 등 근거가 필요하다.
하지만 A씨가 5억 원을 ‘상여금’ 명목으로 지급한 5월은 통상 공익법인이 사업계획을 신고하는 1월과 시차가 크다. 특히 아트센터 나비의 ‘23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그해 14명의 직원에게 지출한 고정성 인건비는 8억4000만 원 수준이다. 상여금 5억 원은 이에 60%에 달한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하면 평소 아트센터 나비의 운영 실태가 문제가 많아 보인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의문점은 공익법인에 왜 수억 원의 현금이 있었느냐다. 재무제표에 따르면, 이 미술관은 약 76억 원 상당의 충분한 현금 및 현금에 상응하는 단기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현금 마련 자체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20년 간 축적한 보조금, 기부금 등을 쓰지 않고 쌓아 놓은 탓이다.
다만, 공익법인의 존재 이유인 ‘공익목적사업’에 지출은 한 해 3억 원 정도(예술 진흥, 교육 등)에 불과한데, 현금성 자산을 76억 원 가까이 비축해둔 이유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불과 몇 해 전에는 아트센터 나비가 보유한 현금만 200억 원에 이른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도 있다.
재계에서는 이 같은 정황 때문에 아트센터 나비의 불성실한 경영을 문제로 꼽는다. 특히 ‘공익법인의 사유화’라는 지적도 나온다. 비서 이씨는 ‘관장’의 일정 관리 등 보조업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이씨가 노 관장의 인감도장과 신분증 등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일반인 노소영씨’의 개인 업무도 처리했다는 정황도 의심을 산다. 이는 공익법인의 사적 활용에 해당할 수 있다.
실제 노 관장이 취득한 상여금은 아니지만 재무담당자 A씨가 허위 인건비 지급을 아무렇지도 않게 실행한 점만으로도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역시 아트센터 나비 내부에서 노소영 관장이 오너라는 인식이 없었다면 이런 사건이 발생할 수 없었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노소영 관장은 정말 몰랐을까?
이날 법정에는 노 관장 측 대리인인도 참석했다. 대리인은 “(이씨가) 기소된 후에 점검하는 과정에서 추가 피해금이 발견된 게 있어 조사 중인 점 등을 감안해보면 피고인에게 진지한 반성의 의사가 있는지 묻고 싶다”라며 “과거 피고인이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침해하면서 어떤 일을 벌였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 점을 반영해달라고 재판부에 말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지난해 12월 비서 이씨의 횡령을 처음 인지했다는 노 관장 측의 주장과 달리 최소 그 이전에 해당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한 업계 전문가는 노 관장이 거액의 현금을 자유입출금계좌에 저축했을 경우, 월 100만~5000만 원이 무단 인출되는 상황을 인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비서 이씨가 노 관장 명의로 1억5000만 원을 대출한 정황도 있는데, 이는 비대면 대출을 통해 실행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러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본인 명의 휴대폰 등을 통해서 수시로 거액의 이체, 대출 등을 안내하고 본인 확인을 하는 등 과정이 까다롭기에 5년 간 이 사실을 몰랐다는 점은 다소 이해가 안 된다는 의견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개인 간 사기가 아닌 일부 공익법인의 관리 부실과 사유화라는 사회적 측면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라며 “이를 계기로 한 개인이 수십 년간 외부의 감시와 견제 없이 공익법인을 장악했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을 파악해 제도 개선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디어펜=박준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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