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지 기자]정부가 전기차 보조금 문턱을 대폭 상향하고 있다. 올해 초 국산 전기차에 유리한 방향으로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개편한 데 이어 전기차 보급대상 평가 규정 개정으로 보조급 지급 기준이 한층 더 까다로워진다. 중국산 브랜드의 저가 공세를 막고 국내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행보로 분석된다.
9일 업계에 따르면 환경부는 최근 '전기자동차 보급대상 평가에 관한 규정'을 개정했다. 보조금을 받기 위한 기준에 적합한 차량인지 평가하는 규정으로 약 1년여만의 개정이다. 개정안은 올해 말 시행될 예정이다.
환경부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필요한 자금을 보조하거나 융자할 수 있는 전기차를 결정하기 위해 세부 규정을 통해 차량 성능 향상을 유도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개정안은 △전기자동차(전기차) 상온 1회 충전 주행거리 기준 상향 △상온 대비 저온 1회 충전 주행거리 비율 단계적 상향 △상온 대비 저온 1회 충전 주행거리 비율, 배터리 에너지밀도 평가 규정 신설 △전기자동차 보급평가 시 처리기간 개선 등의 내용을 담았다.
전기차의 저온 1회 충전 주행거리는 상온 1회 충전 주행거리에 따라 적용된다. 내년까지는 상온에서 1회 충전 주행거리가 300km 미만인 전기차는 상온 주행거리의 80% 이상을 유지해야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2026~2027년에는 85%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2028~2029년도 동일한 기준(85%)이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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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 문턱을 대폭 상향하고 있다. 사진은 전기차 충전중인 모습./사진=김연지 기자 |
상온 주행거리 300km 이상은 상온 대비 저온 75% 이상 기준이 2026~2027년 80% 이상, 2028~2029년 85% 이상으로 점차 증가한다. 상온 주행거리 400·500km 이상은 70% 이상 기준이 2026~2027년 75% 이상, 2028~2029년 80% 이상으로 늘어난다.
규정 시행 당시 종전의 규정에 따라 평가시험을 받은 전기자동차는 이 규정 시행 후 6개월이 지나기 전까지 개정규정에 따른 배터리 에너지밀도, 1회 충전 주행거리에 대해 평가를 받아야 한다.
평가를 완료한 전기차 중 부분적인 성능개선, 사양변경 등으로 변경인증을 받은 경우에는 당해 연도의 기준을 적용한다. 다만 배출가스인증서에 최초 기재된 상온·저온 1회 충전 주행거리보다 변경인증시 상온·저온 1회 충전 주행거리가 동일하거나 더 높을 경우는 제외한다.
기아 레이 EV(79.5%), 아우디 Q4 40 e-트론(65.2%), 폭스바겐 ID.4 프로(69.4%) 등이 올해 기준 저온 1회 충전 주행거리 기준에 미달한다. 저온 주행거리를 개선해 내년 상반기 중 재평가를 받지 않으면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 지급 규정을 강화하는 것은 무섭게 몸집을 불려 가고 있는 중국 브랜드의 국내 진입에 대한 사전 대응으로 해석된다. 앞서 정부는 올해 초 국산 전기차에 유리한 방향으로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개편한 바 있다.
지난해 테슬라를 꺾고 전기차 판매 1위에 올라선 중국 비야디(BYD)가 국내 승용차 시장 진출을 위해 본격 드라이브를 걸고 있고, 중국 지리그룹 산하 럭셔리 전기차 브랜드 지커도 국내 상륙을 준비하고 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과 주요 국가들의 견제 강화에도 중국 전기차는 나 홀로 독주하며 압도적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8월 전 세계 80개국에 등록된 전기차(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 포함)는 999만9000대로 전년 동기 대비 20.1% 늘었다.
업체별로 보면 중국 BYD가 전년 동기 대비 27.9% 증가한 202만5000대를 판매했다. BYD는 이 기간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를 제외한 순수전기차만 약 98만 대를 판매했다. 이는 전기차만 파는 미국 테슬라(2위)의 판매량(110만4000대)을 위협하는 수준이다.
3위인 지리그룹은 전년 동기 대비 52.8% 늘어난 76만1000대를 판매했고, 5위 상하이자동차(SAIC)는 57만4000대(20%↑), 6위 창안자동차는 37만6000대(47.5%↑)를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업체의 판매량이 천정부지 치솟고 있다. 지역별 인도량 순위도 중국이 1위를 기록,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 자리를 견고히 지켜내고 있다"면서 "저가 공세를 퍼붓는 중국 브랜드의 국내 진입에 앞서 정부가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보조금 문턱을 높이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연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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