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은행권이 지방자치단체 금고은행으로 선정된 이후, 지자체에 협력사업비(출연금) 명목으로 제공한 금액이 수천억원대에 달한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나아가 지자체가 출연금 명목으로 은행들에게 제시한 금액도 수조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5대(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시중은행의 출연금 비중이 90%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은행들이 지나친 경쟁을 펼치지 않도록 당국이 개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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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권이 지방자치단체 금고은행으로 선정된 이후, 지자체에 협력사업비(출연금) 명목으로 제공한 금액이 수천억원대에 달한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나아가 지자체가 출연금 명목으로 은행들에게 제시한 금액도 수조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22일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확보한 '국내 은행 지방자치단체 금고은행 선정 현황'에 따르면 7월 말 현재 전국 290개 지자체의 금고은행으로 선정된 은행은 총 12곳으로 추산된다.
NH농협은행이 총 187개의 지자체로부터 선택을 받아 가장 많았고, 이어 신한은행 24곳, KB국민은행 19곳, 우리은행 15곳, iM뱅크 11곳 등이었다. IBK기업은행·BNK부산은행·제주은행은 각각 지자체 1곳의 지지를 받는데 그쳤다.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농협은행의 경우, 운용하는 금고 규모도 7월 말 기준 약 280조 3181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신한은행 80조 5214억원, 국민은행 15조 1648억원, 우리은행 4조 7835억원, iM뱅크 19조 4170억원 등이었다.
반면 지자체들은 이들 은행에 금고운용을 맡기면서 협력사업비 및 출연금으로 총 1조 1389억원을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은행들은 약 6487억원을 출연금 명목으로 내놨다. 신한은행이 2345억원으로 전체의 36.2%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이어 농협은행 1965억원, 우리은행 607억원, 국민은행 592억원, 부산은행 303억원, 하나은행 182억원 등이었다. 지자체 금고은행 선정을 위해 출연한 현금의 약 90.2%가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5대 시중은행과 특수은행인 농협은행에서 비롯된 셈이다.
지자체 기준으로는 서울시가 신한은행으로부터 1330억원을 받아 가장 많았다. 이어 경기도가 국민은행으로부터 158억원, 농협은행으로부터 600억원의 출연금을 확보했다. 인천시는 농협은행으로부터 64억원, 신한은행으로부터 554억원을 받았다. 부산시는 국민은행으로부터 102억원, 부산은행으로부터 303억원을 출연금으로 받았다. 대전시에서는 농협은행과 하나은행이 각각 24억원 87억원의 출연금을 제공했다.
전국의 각 지자체는 2~4년을 주기로 금고지정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은행들이 제출한 제안서를 심사·평가해 차기 금고은행을 선정하고 있다. 금고지정을 위한 입찰공고서에는 자치단체금고지정 평가항목 중 '자치단체와의 협력사업계획'의 평가가 있는데, 여기에 '출연금' 평가 배점이 있다.
결국 지자체 금고운용권을 확보하려면 출연금 경쟁을 펼칠 수밖에 없는데, 상대적으로 자산규모가 큰 대형 은행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현 제도가 은행 간 출연금 출혈경쟁을 부추기는 셈이다.
이처럼 대형 은행들이 지자체 금고운용에 눈독을 들이는 건 사업영역 확장 외에도 막대한 자금을 저리로 확보·운영할 수 있는 까닭이다. 전산시스템 마련 및 출연금 등으로 제공하는 비용보다 득이 많다는 판단에서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지자체 금고운용에 뛰어드는 것이다.
특히 한번 시금고를 맡게 되면 대체로 오랫동안 지위를 유지하는 만큼 지역 사회 영업확대 등에도 유용하다. 지자체 금고를 맡는 은행은 지자체가 받는 정부 교부금, 지방세 세입 등을 예치받고 세출, 교부금 등 출납 업무를 한다. 또 지자체 예산 등을 예금으로 받을 수 있고, 공무원을 신규 고객으로 유치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최근 새로운 시금고 입찰을 낸 광주시와 부산시에 대형 시중은행이 도전장을 내밀어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부산은행은 지난 2000년부터 약 24년간 시금고 1금고를 운용했는데, 차기 지역시금고 1금고 경쟁에 국민은행·기업은행과 경쟁했다. 광주은행도 지난 1969년부터 약 55년간 광주시 1금고를 맡았는데, 올해 경쟁에서 국민은행이 참전하기도 했다.
다행히 부산시와 광주시는 1금고에 각각 부산은행 광주은행을 최종 선정했지만, 대형 시중은행이 앞으로도 경쟁에 나설 가능성은 농후하다. 이에 자금동원력에서 상대적으로 열위에 있는 지방은행들이 밀려날 것이라는 우려는 여전하다.
강 의원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시중은행과 특수은행인 농협이 특정 지자체의 금고선정을 위해 수천억원대 천문학적 수준의 현금을 출연금으로 쏟아 붇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금융당국은 은행의 지자체 금고은행에 선정되기 위한 과도한 출혈경쟁을 줄이고 막대한 재정을 지닌 시중은행 등에 집중된 지자체 금고 선정을 지양하기 위해 지역재투자 평가 결과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 행정안전부와 협의해야 할 것이다"고 밝혔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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