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트럼프 행정부 대응 파격인사…성 김 고문, 사장 임명
현대차, 하이브리드 혼류생산·기아, EV9 생산 속도 조절
"IRA, 폐지보다는 축소에 가능성…우방국과의 관계도 생각해야"
[미디어펜=김연지 기자]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할 계획이라고 알려지면서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는 시나리오별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전기차 업계가 이미 전기차 수요 둔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전기차 세액공제까지 폐지되면 추가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18일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석유·가스회사 '콘티넨털 리소스즈' 창립자인 해럴드 햄과 더그 버검 노스다코타 주지사가 이끄는 에너지정책팀은 IRA 세액공제 폐지를 논의 중이다. 이에 국내 자동차 업계도 대응 방안 마련에 고심 중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여러 차례 IRA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고, 바이든 행정부의 '전기차 의무화 정책'을 폐지하겠다고 거듭 공약한 바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IRA 세액공제 폐지에 찬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의 최대 전기차 판매업체인 테슬라 측은 정권 인수팀에 보조금 폐지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머스크는 지난 7월에도 전기차 보조금이 폐지되면 테슬라의 판매에는 약간의 피해가 있겠지만, 경쟁사에게는 치명적일 것이라며 보조금 폐지가 장기적으로 테슬라에 도움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 트럼프 전 대통령./사진=연합뉴스


미국은 현대차그룹의 최대 시장이다. 글로벌 판매 순위 3위에 오르게 된 것도 미국 시장의 공이 컸다. 현대차·기아는 지난 10월 미국에서 현대차 7만1802대, 기아 6만8908대, 제네시스 6903대를 판매했다. 현대차의 10월 미국 판매량은 지난해 동기 대비 18.3% 증가했다. 기아 판매량은 16.5%, 제네시스 판매량은 20.6%나 늘었다.

IRA는 배터리와 핵심광물 등에 대한 원산지 요건을 충족하고 미국에서 제조한 전기차에 세액공제 형태로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차량당 최대 7500달러(약 1000만 원)의 보조금을 제공한다. 현대차·기아는 IRA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세제혜택 혜택을 받지 못했지만 IRA 대응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미국 자동차 리스(Lease) 시장을 공략하며 리스크를 만회해 왔다. 

하지만 트럼프 재집권으로 IRA에 따른 세제 혜택 기준에 맞춰 적극 대미 투자를 늘려온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졌다. 올해 4분기부터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신공장(HMGMA) 가동으로 IRA 수혜를 기대했지만 이것 역시 장담할 수 없게 됐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트럼프 2기 시대를 앞두고 외국인 사장단을 전면에 내세우는 등 대비책 마련에 나섰다. 현대차그룹은 그룹 싱크탱크 수장에 성 김(Sung Kim) 현대차 고문역을 사장으로 영입해 정식 임명할 방침이다. 또 현대차 창사 57년 만에 처음으로 무뇨스 현대차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를 CEO에 선임했다. 트럼프 당선으로 더욱 불확실해진 글로벌 정세에 철저하게 대응하겠다는 현대차그룹의 의지가 고스란히 녹아든 인사다.

성 김 사장은 동아시아·한반도를 비롯한 국제 정세에 정통한 미국 외교 관료 출신의 최고 전문가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부시 행정부부터 오바마·트럼프·바이든 정부에 이르기까지 여러 핵심 요직을 맡아 왔다. 미국 국무부 은퇴 후 올해 1월부터 현대차 고문역으로 합류해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통상·정책 대응 전략, 대외 네트워킹 등을 지원해 왔다.

성 김 사장은 글로벌 대외협력, 국내외 정책 동향 분석 및 연구, 홍보·PR 등을 총괄하면서 그룹 인텔리전스 기능 간 시너지 제고 및 글로벌 프로토콜 고도화에 기반한 대외 네트워킹 역량 강화에 주력할 전망이다.

호세 무뇨스 사장은 지난 2019년 현대차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GCOO) 및 미주권역담당으로 합류한 이후 딜러 경쟁력 강화와 수익성 중심 경영 활동을 통해 북미지역 최대 실적을 잇달아 경신했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2022년에는 미주 권역을 비롯한 유럽, 인도, 아중동 등 해외 권역의 글로벌 사업을 총괄하는 최고운영책임자(COO) 보임과 더불어 현대자동차 사내이사로 역할이 확장됐다. 

현대차는 하이브리드 차종의 혼류생산을 늘리는 방식으로 미국 정책 변화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기아는 미국 현지에서 대형 전기 SUV(스포츠유틸리티차) EV9 생산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EV9을 조지아 공장에서 생산하더라도 강화된 IRA 요건에 따라 보조금을 절반 수준밖에 받지 못하는 데다 트럼프 재집권에 의한 변수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실질적으로 IRA 폐지 가능성이 낮다는 주장도 있다. IRA 혜택을 받기 위해 외국 업체들이 공장을 지은 곳이 미시간·오하이오·조지아 등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 지역인 만큼 실제 폐지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IRA 세제 혜택은 전기차 구매자에 대한 혜택, 미국에 대한 투자에 대한 세금 감면, 배터리나 자동차 생산과 관련된 세금 혜택 3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현재 트럼프는 전기차 구입 보조금 관련 조항을 손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IRA 완전 폐지를 위해서는 전체 상원의원 60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데 현재 해외 투자에 의해 지어진 공장들이 대부분 러스트벨트에 지어졌고, 이 지역에 공화당 의원들이 많이 당선이 됐다"면서 "IRA 전면 폐기에 만장일치로 동의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 내 자동차 협회의 반대도 있고, 국가 간 신뢰 문제도 얽혀있다. 정책의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작년에만 국내 기업들이 30조에 가까운 자금을 투자해 미국 내 일자리 투자에 기여했다"면서 "이런데도 불구하고 정책을 완전 폐기하겠다고 한다면 향후 우방국과의 우호적인 협력관계에서 치명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전면 폐지의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1기 때도 5%의 관세를 25%로 늘린다고 했다가 다시 후퇴한 일이 있다면서 미국 일자리 창출에 대한 약속을 받으면서 일부 축소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디어펜=김연지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