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최인혁 기자]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따라 국회를 장악하기 위해 투입됐던 계엄군 280명은 소집될 때까지도 훈련을 위한 것으로 알고 있었고, 출동 직전에야 계엄령 사실을 알게 된 것으로 5일 파악됐다.
이들은 평소부터 당일까지 계엄령에 대해선 전혀 상상하지 못했지만, 군인으로서 차마 항명할 수 없어서 결국 지시에 따랐다고 말하고 있다.
미디어펜의 취재를 종합한 것에 따르면 국회가 4일 오전 1시경 유혈사태 없이 비상계엄 해제요구안을 처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280명의 계엄군들이 소극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으로 확인됐다.
당시 작전과 관련됐던 계엄군들의 고백에 따르면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기보다,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시민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계엄군 또한 ‘제복입은 시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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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무장한 계엄군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2024.12.4/사진=연합뉴스 |
“계엄군 돼 국회 장악할 줄 몰라…훈련 상황인 줄 알았다”
미디어펜은 5일 복수의 계엄군과 군 관계자를 통해 국회로 출동하게 된 전반적인 배경을 취재했다.
군 관계자 A씨는 “당시 오후 8시쯤 FTX(Field Training Exercise·야외기동훈련)를 진행한다면서, 훈련상황으로 비상소집했다. 훈련으로 알고 소집에 응했는데, 오후 9시쯤에는 헬기를 탑승해야 한다고 이동하라고 했다. 헬기에 탑승하기 전까지 계엄에 대한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A씨는 당시 계엄군으로써 부여된 임무 또한 명확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단편적으로 ‘국회를 장악해야 한다’ 정도의 임무만을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국회를 장악하기 위해 어떻게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지, 또 누구를 위해 무슨 목적으로 국회를 장악해야 하는지 등은 전혀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다고 전했다. 다만, 곽종근 특전사령관으로부터 ‘민간인 피해가 발생해선 안 된다’라는 교전 수칙을 거듭 강조 받았다고 말했다.
A씨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령관님 또한 정당한 출동이 아닌 것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계엄에 대한)모든 책임을 홀로 감당하고 부대원을 보호하기 위해 소극적인 대처를 주문하는 듯한 느낌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에 이들은 통로를 개척할 전문 장비도, 또 출입을 막는 보좌진과 국회사무처 직원, 시민 등을 진압할 장비도 모두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맨손’으로 임했다고 한다. 민간인 피해를 우려해 최소한의 조치만을 취한 것이다.
A씨는 “시민들이 다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국회 장악을 위해)무기나 장비를 사용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B씨도 “뒤늦게 생각해 보니 지난 2일부터 계엄에 대한 조짐이 보였다. 부대에서 비상대기를 강조했고, 다음 날 저녁에 갑자기 계엄이 선포됐다”라며 “그전까지는 아무도 우리가 계엄군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라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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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귀령 더불어민주당 대변인과 계엄군이 몸싸움을 펼치고 있는 과정에서 총기 피탈 방지 끈 등이 벗겨지고 있는 모습./사진=유튜브 오마이뉴스TV 캡처 |
“이재명·한동훈 체포조 사실무근…수갑 ‘피탈’ 당한 것”
그러면서 이들은 계엄군과 관련된 ‘루머’는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특히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계엄군이 ‘수갑’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증거로 이재명,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체포조가 존재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수갑은 이들을 체포하기 위한 용도로 소지한 것이 아닌, 출동을 위한 기본 장구류 중 일부라는 것이다.
이어 A씨는 “당시 진입 과정에서 장구류는 물론 총기를 피탈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에 물리적인 충돌이 발생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누구도 의도적으로 물리력을 행사해 누군가를 제압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면서 수갑은 충돌 과정에서 ‘피탈’당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씨는 “누구를 체포하려거나, 총구를 겨눠 민간인을 위협했다는 사실은 최소한 내가 알고 있는 한없다”라고 덧붙였다. 이는 안귀령 민주당 대변인 등이 계엄군의 출입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총기 피탈 방지 끈’을 벗기고, 총구를 잡아당긴 것에 대한 반박으로 보인다.
또 이들은 계엄군이 엉성한 모습을 보인 탓에 작전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 것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B씨는 “우리의 주 임무가 어떤 것인가. 대상이 시민과 민간인이 아닌 적군이었다면 말이 달라졌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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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엄군이 비상계엄령 해제 후 국회에서 철수하면서 시민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고 있는 모습/사진=유튜브 허재현TV 캡처 |
국회에 투입된 특전사령부 소속 계엄군들은 전시에 적 후방에 침투해 요인 암살, 납치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이들이 적극적으로 작전에 임했다면, 국회 장악은 충분히 가능했지만 충돌을 자제하기 위해 소극적으로 대처했다는 주장이다.
실제 당시 계엄군은 시민들과 몸싸움 과정에서, 시민들이 밀려나자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끌어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또 한 계엄군은 비상계엄이 해제된 후 국회에서 철수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을 향해 연거푸 허리를 숙이고 사과하기도 했다.
A씨는 "우리 스스로가 (계엄에 대한) 정당성을 느끼지 못했고, (국회를 장악하겠다는) 의욕도 없었다. 그것이 (국회 장악이라는) 작전을 실패한 원인인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미디어펜=최인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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