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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광문 광주 광산경찰서장 |
호주머니에 일만원권 지폐 2장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한 장은 구깃구깃하고 다른 한 장은 방금 은행에서 인출한 것처럼 새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시장에 가서 일만원의 물건 값을 지불할 때 여러분은 어떤 지폐를 사용할 것인가? 십중팔구 낡은 지폐일 것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두 지폐 모두 객관적 가치는 1만원으로 동일하다. 하지만 주관적 가치에서는 새 지폐가 헌 지폐보다 높다.
사람들은 새 지폐는 자신이 보관하거나 보다 가치 있는 곳에 사용하고자 한다. 객관적·명목적 가치가 동일하다면 굳이 주관적․실질적인 가치가 높은 새 지폐를 내어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16세기 영국의 금융인 그레샴은 이를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 money)’라고 설명한다. 명목가치와 실질가치의 차이에서 오는 시장의 무질서를 말한다.
준법과 불법의 두 가지 행위태양이 있다. 준법과 불법의 객관적 가치를 자신이 기대하고 있는 법적 효과라고 본다면 양자 동일하다. 그러나 준법은 시간적․경제적 대가를 더 지불해야 하기에 주관적·실제적 가치는 상대적으로 불법에 비하여 더 높다. 따라서 사람들은 준법과 불법 중 쉽게 불법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면 위의 그레샴이 언급한 바와 같이 불법이 준법을 구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불법집회시위는 대표적인 우리사회의 불법태양이다. 경찰청의 역대 정부별 불법폭력집회 건수와 경찰부상자 수 자료를 살펴보면 참여정부 86건에 656명, 이명박 정부는 53건에 268명, 현 정부는 2014년까지 40건 85명으로 좀처럼 불법폭력행위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불법의 방치는 결국 준법의 구축이라는 우리사회의 무질서를 가속화한다.
경찰은 해마다 불법의 준법 구축을 방지하기 위하여 ‘준법보호·불법예방’이라는 패러다임하에 다양한 집회시위 관리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법질서의 최소한의 보루인 ‘폴리스라인’ 운용, 이웃에 대한 배려인 ‘소음’ 과 ‘행진’관리, 최후의 수단으로 차단과 차벽, 불법행위자에 대한 적극적인 법적책임 강구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불법폭력시위가 개선되지 않는 이유가 무얼까. 먼저 경찰의 집회시위 관리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많은 시민들은 아직도 경찰을 집회시위 걸림돌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집시법의 법규범력의 약화도 한 몫을 한다. 과거 민주화 운동의 영향 때문이라 자위해 본다. 마지막으로 불법폭력시위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용도 불법의 준법 구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장애요소다.
최근의 집회시위는 주로 노사갈등 등 생존권 문제로 인한다. 따라서 모든 불법을 공권력으로 억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준법과 불법’ 이분론이 아닌 ‘갈등조정’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첨예한 이해관계에 대한 지역사회의 갈등조정 합의체가 절실한 이유이다.
이제 지역사회의 무질서는 경찰과 지역공동체가 함께 나서야 할 때이다. 민·관·경 콜라보의 하모니를 기대해 본다. /임광문 광주 광산경찰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