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가스산업 정책 도마…"국내 은행 기후변화 대응안 모니터링해야"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현지시간으로 20일 백악관에 재입성하는 가운데, 금융시장이 탄소배출산업에 투자를 늘릴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행정명령을 통해 대표적인 탄소배출 산업인 석유·천연가스 시추를 확대한다고 밝힌 바 있는데, 미국계 글로벌 은행들도 기조에 발맞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산업 대신 탄소배출산업에 지원을 확대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친환경주의를 표방하는 유럽계 은행들은 기존 방침을 이어갈 것으로 보여, 우리나라 은행들이 기후변화 대응방안 모니터링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는 평가다.

20일 하나금융연구소가 펴낸 금융경영브리프 '미 대형은행들 탄소중립 선언 연합(NZBA) 탈퇴'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2개월 새 미국계 6개 대형은행들이 연이어 UN 산하 '탄소중립 은행연합(NZBA)'을 탈퇴했다. 지난달 웰스파고(Wells Fargo), 골드만삭스(Goldman Sachs)에 이어, 이달 씨티(Citi),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 JP모건(JP Morgan) 등이 연이어 탈퇴했다. 

   
▲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현지시간으로 20일 백악관에 재입성하는 가운데, 금융시장이 탄소배출산업에 투자를 늘릴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사진=연합뉴스 제공


이에 앞서 글로벌 보험사들도 탄소중립 연합체인 NZIA를 줄줄이 탈퇴했는데, 결국 지난해 4월 해체된 바 있다. 그동안 탄소제로(넷제로, Net-zero)를 주장하며, 석유·천연가스 시추 산업 지원을 지양하던 행보와 대비된다.

NZBA는 오는 2050년까지 은행의 대출, 투자 및 자본 시장 활동을 넷제로 온실 가스 배출에 맞춰 조정하기 위해 지난 2021년 COP26 기후 정상회의에서 설립된 유엔 주관 그룹이다. 

이 같은 글로벌 금융권의 탈(脫)탄소 러시는 트럼프 재집권을 앞두고 여당인 공화당이 탄소중립 연합에 가입한 금융사에 압력을 확대한 까닭으로 해석된다. '기후변화 회의론자'로 유명한 트럼프가 재집권하면서 화석연료 에너지 정책도 재조명되고 있는데, 정책의 일환으로 공화당은 연합체에 가입한 금융사에 "독점 금지법을 위반하고 미국 소비자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공화당은 금융사들의 ESG 전략에 문제를 제기하며, 금융사의 석유 및 가스 산업에 대한 정책 검토 및 처벌을 예고한 바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11월 공화당 색채가 강한 미국 11개 주(州)는 ESG 투자에 집중한 블랙록(BlackRock), 뱅가드(Vanguard), 스테이트스트리트(State Street) 등을 상대로 반독점 규정 위반 혐의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특히 텍사스주 사법부는 6개 은행의 NZBA 탈퇴 선언 이후 은행 검토를 중단하고, 차단했던 지방채권 거래도 허용해줬다.

미국계 은행들이 트럼프 대통령 재임에 발맞춰 ESG 대신 탄소배출 투자로 급선회한 가운데, '친환경'을 표방하는 유럽계 은행들은 더욱 결속력을 다지는 모습이다. 유럽계 은행은 연합체 140여개 회원국 중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EU 기후변화 규제에 따라 연합체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전망이다. 

실제 유럽 은행들은 연합체를 탈퇴할 의사가 없음을 공식화하면서도, 탄소배출 관련 산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중단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네덜란드계 금융사 ING는 지난해 새로운 천연액화가스(LNG) 수출 터미널에 신규자금 조달을 중단했고, 프랑스계 BNP 파리바스(Paribas)와 크레디아그리콜(Crédit Agricole)은 석유 및 가스 생산자를 위한 채권 구조화 중단을 결정했다. 네덜란드계 소규모 은행인 트리오도스은행도 화석연료 확산 금지 조약 이니셔티브를 지지하며, 기후행동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보고서를 집필한 방승연 하나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유럽은행들은 EU의 기후변화 규제와 유럽은행감독청(EBA)의 ESG 리스크 관리 강화 지시에 따라 향후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계·유럽계 은행들이 갈지자 행보를 보이는 가운데, 우리나라 은행들의 행동은 여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국내 은행 중에서는 총 13개사가 오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선언했는데, 이 중 11개사가 2030년까지 2019~2022년 대비 금융배출량을 약 26~48% 감축하겠다는 중간목표를 설정한 상태다. 

NZBA에도 가입한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을 놓고 보면 우리은행이 오는 2030년까지 ESG금융 명목으로 100조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이어 하나은행이 60조원, 신한은행(지주 차원)과 NH농협은행이 각 30조원, KB국민은행이 25조원 등을 2030년까지 각각 투입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방 수석연구원은 국내 은행들이 급진적인 탈탄소중립 행보를 보일 필요는 없음을 시사했다. 실제 NZBA를 탈퇴한 JP모건의 경우 연합체 상위기관인 GFANZ와 협력해 에너지 전환과 탈탄소 산업 참여사를 지원한다고 밝혀, 탄소중립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방 수석연구원은 "국내 은행들은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감축 전략 등을 자율 공시하는 등 금융배출량에 대한 측정 및 관리를 강화하는 추세"라며 "유럽은행은 물론 NZBA 탈퇴한 미 대형은행들도 탄소중립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으로 향후 글로벌 은행들의 기후변화 대응 방안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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