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당일인 20일(현지시간)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 즉, 핵능력 국가로 지칭하면서, 첫 임기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잘 지냈다고 언급해 북미대화 가능성을 내비쳤다. 앞서 트럼프 2기 국무장관·국방장관 후보자와 같은 표현을 쓴 것으로 북한에 ‘러브콜’을 보내는 것은 분명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러시아와 밀착하면서 신냉전 구조라고 불리는 현 상황에 만족하고 있는 북한이 과연 트럼프 대통령과 다시 대화 테이블에 앉을지는 알 수 없지만, 북한이 안보리 제재에서 벗어나는 길은 미국과 협상하는 것이 유일한 만큼 그 시기가 문제라는 관측이 대체적이다.
이럴 경우 한국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고수할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문재인정부는 트럼프 1기 때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미국과 함께 주장하다가 막바지에 ‘단계적 비핵화’ 방침으로 선회했다. 현 윤석열정부는 조 바이든 정부와 함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강력하게 밀어붙여왔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어떤 조건이든 내세워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이려고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럴 경우 한국정부는 북미대화를 지지하고 트럼프가 만드는 새로운 질서에 편승해 우리입장을 반영시키는 전략을 써야 한다는 전문가의 지적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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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47대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미국 의회의사당 로툰다홀에서 취임연설을 하고 있다. 2025.1.21./사진=연합뉴스 |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집무실에 입성한 후 행정명령 서명식을 가지면서 취재진이 북한과 관련한 질문을 하자 “이제 김정은은 핵능력을 가졌다(Now, he is a nuclear power)”고 말했다.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답변은 지난 2017년 첫 임기를 시작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백악관을 떠나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주요 안보위협으로 북한을 지목했었는데, 이날 퇴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안보위협으로 무엇을 지목했냐는 질문에 따른 것이다.
취재진이 “4년 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최고 위협이 북한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도 우리나라 최고 위협에 대해 얘기했냐”고 묻자 트럼프 대통령은 “아니다”라면서도 “당장 많은 것들이 있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난 김정은과 매우 우호적이었고, 그는 나를 좋아했다. 나는 그를 좋아했고, 매우 잘 지냈다”고 김 위원장과 좋은 관계를 주장했다. 또 “그들은(오바마 행정부는) 그게(북한이) 엄청난 위협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그는(김정은은)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이다. 우리는 잘 지냈다. 그가 내가 돌아온 것을 반기리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2017년 스스로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바 있으나 그동안 국제사회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국과 미국 등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비핵화 정책을 유지해온 만큼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워싱턴 문법’에 전혀 맞지 않는 것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이전에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답변서에서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라 표현했고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후보자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는 환상”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까지 '뉴클리어 파워'를 말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면서 대화에 나설 경우 핵동결 및 핵군축 협상이 진행되고, 미국을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만 제거하는 선에서 대북제재를 해제하는 수순을 밟을 수 있다. 우리입장에선 가장 ‘나쁜 거래’이지만 2018년과 2019년 1·2차 북미정상회담을 해본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북한의 핵포기를 조건으로 내세울 경우 김 위원장이 대화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다만 아직까지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북한을 공식 핵보유국으로 인정할지 여부는 정확하게 밝혀진 바 없다. 핵보유국의 공식 용어는 '뉴클리어 암드 스테이트'(nuclear-armed state)이다. 그리고 NPT상 핵보유국 용어는 '뉴클리어 웨폰 스테이트'(nuclear weapon state)이다. 따라서 ‘뉴클리어 파워’란 표현 하나만으로 북한에 대한 핵보유국 인정 판단은 성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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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취임식을 마친 뒤 워싱턴 백악관에서 행정명령에 서명을 하고 있다. 2025.1.21./사진=연합뉴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드러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안보라인 면면과 발언 등을 미뤄볼 때 북미대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고, 북한으로서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끝났을 때 러시아가 미국과 관계 개선에 나설 경우 북미대화를 거부할 수만은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패싱하고 북미대화를 추진할 경우 우리로선 한미 관계에 균열이 생기는 것은 물론, 한일 관계와 한중 관계마저 흔들리는 복합적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명예교수는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려면 아무 것도 안하는 것보다 뭐든 하는 것이 나은 상황이다. 현재 50개의 핵무기를 갖고 있는 북한은 매년 5개씩 핵무기를 늘려서 진짜 핵보유국으로서의 영향력을 과시하려 할 것”이라면서 “미국이 북한과 대화에 나선다고 해도 핵무장을 용인하려는 것이 아닌 만큼 한국정부도 이를 지지하고 우리입장을 반영하는 편승 전략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이어 “과연 북한이 미국과 대화에 나설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지만 러-우 전쟁이 끝났을 때 북한이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면 미국과 마주앉을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우리가 트럼프 정책에 편승하지 않는다면 패싱 당할 수밖에 없으므로 지금이라도 트럼프 행정부와 보조를 맞출 공동의 로드맵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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