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견희 기자]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경영권 승계와 관련 '부당 합병·회계 부정' 혐의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난해 2월 1심 선고에서 무죄가 나온 지 1년 만이다. 이로써 삼성그룹은 '사법 리스크'를 털고 안정적인 경영 발판을 마련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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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11월 25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삼성 부당합병 의혹' 관련 항소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 = 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3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재판장 백강진)는 삼성그룹 부당합병·회계 부정 혐의 사건의 선고공판에서 이 회장의 자본시장법과 외부감사법 위반, 업무상 배임 등 19개 혐의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이 회장은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정에서 최소비용으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고 지배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미전실이 추진한 각종 부정 거래와 시세 조종, 회계 부정 등에 관여한 혐의로 2020년 9월1일 기소됐다.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나머지 피고인 13명에게도 원심과 같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과 합병 시점,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지배력 여부 등 쟁점 사항에 대해 차례로 판단한 뒤 검찰 주장을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의 가장 큰 쟁점이었던 로직스의 허위공시·부정회계 의혹에 대해 "(바이오젠의) 콜옵션이 행사되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잃는다는 사실이 주요 위험이라고 공시했어야 된다고 본다"면서도 "하지만 은폐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업계에선 지난해 8월 서울행정법원이 내린 판결이 이번 재판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해왔다. 앞서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는삼성바이오로직스가 증권선물위원회를 상대로 낸 시정요구 취소 청구 소송에서, 2015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 과정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사실상 일부 인정하는 판결을 낸 바 있다.
검찰은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이 같은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을 반영해 공소장을 변경하기도 했다. 또 검찰은 1심 무죄 판결 이후 이 회장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2000건이 넘는 새로운 증거를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했으나 이번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보고서가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조작됐다는 검찰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회장의 변호인단은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신 재판부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이 사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정말 긴 시간이 지났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이제는 피고인들이 본연의 업무에 전념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이 회장의 향후 해외 출장과 경영계획과 관련한 질문에는 "경영에 관해 변호인이 말씀드릴 사항은 없다"고 답했다. 삼성전자 측도 이 회장의 무죄 선고에 대해 별도의 입장을 내지는 않았다. 삼성 관계자는 "공식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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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 서초사옥 전경./사진=삼성전자 제공 |
◆ 반도체 사업부문 경쟁력 강화 속도 낼까
사법리스크가 일단락 된 만큼 이 회장은 뉴 삼성 만들기에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의 상고 가능성이 아직 남았지만, 지금 당장 삼성전자의 부진 요인으로 꼽히는 DS(반도체)사업부문의 경쟁력 회복에 힘쓸 것으로 보인다.
재계에선 삼성의 반도체·AI 등 투자 결정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기업을 넘어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해왔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분기부터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의 8단 및 12단 제품 양산에 돌입해 AMD 등 고객사에 납품을 시작했지만 AI 가속기 시장 1위인 엔비디아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에 이 회장이 적극 나서 HBM3E에 대한 엔비디아 품질테스트 통과를 위한 경영행보도 이어갈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최근 블룸버그통신이 삼성전자의 HBM3E 8단 제품이 지난해 12월 엔비디아로부터 공급 승인을 받았다는 보도를 내면서 기대감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밖에도 이 회장이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리거나 하만 이후 멈춘 대형 인수·합병(M&A)을 진두지휘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를 통해 세계 최초 AI(인공지능) 스마트폰을 시장에 선보인 기업이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뉴 삼성 만들기에 본격 시동을 걸 가능성이 높다.
한편 검찰은 지난해 11월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면죄부가 주어진다면 지배주주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위법과 편법을 동원해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합병을 추진할 것"이라며 징역 5년에 벌금 5억 원을 구형했다.
이어진 최후진술에서 이 회장은 "삼성과 저에게 보내 주신 애정 어린 비판과 격려를 접하면서 회사 경영에 대한 새로운 각오도 마음속 깊이 다졌다"며 "국내는 물론 전 세계 곳곳의 여러 사업가와 전문가를 만나 다양한 목소리를 들었고, 국내외 현장에서 뛰고 있는 여러 임직원과 소통하면서 삼성의 미래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국민의 사랑을 받는 삼성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소명에 집중할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미디어펜=김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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