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류준현 기자] 국내 대형 시중은행의 행원들이 대출 브로커와 공모해 부당대출을 내어주고 그 대가로 금품·향응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은행원이 여신서류를 직접 위조하는 한편, 여신한도를 늘리기 위해 감정평가액을 부풀리고 복수의 허위 대출자 명의로 나눠 승인받기도 했다. 이 같은 부당대출사례 급증에 대해 당국은 은행원 개인의 일탈 외에도 단기성과 중심의 핵심성과지표(KPI)를 원인으로 보고 있다. 당국은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구현을 위해 건전성·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고 법규 위반 사항에 엄정 제재할 예정이다.
금융감독원은 4일 '2024년 지주·은행 등 주요 검사 결과' 자료를 통해 지난해 9월까지 전체 은행에서 적발된 부당대출 규모가 3875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사고가 있었던 우리은행이 2334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KB국민은행과 NH농협은행에서도 각각 892억원, 649억원 규모의 부당대출이 적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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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대형 시중은행의 행원들이 대출 브로커와 공모해 부당대출을 내어주고 그 대가로 금품·향응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은행원이 여신서류를 직접 위조하는 한편, 여신한도를 늘리기 위해 감정평가액을 부풀리고 복수의 허위 대출자 명의로 나눠 승인받기도 했다. 이 같은 부당대출사례 급증에 대해 당국은 은행원 개인의 일탈 외에도 단기성과 중심의 핵심성과지표(KPI)를 원인으로 보고 있다. 당국은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구현을 위해 건전성·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고 법규 위반 사항에 엄정 제재할 예정이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당국 검사결과에 따르면 국민은행 A 팀장은 시행사·브로커와 작업대출을 모의해 892억원 상당의 부동산 부당대출을 취급했다. 허위 매매계약서 등 관련 서류를 제공받아 대출이 가능한 허위 대출자(차주)를 선별하고, 대출이 용이한 업종으로 변경하도록 유도하는 식이다. 그 대가로 A 팀장은 일부 대출에 대해 금품 및 향응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대출 취급 시 징구한 임대차계약서가 허위로 의심되는 정황이 있었지만 추가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고 시설자금대출을 취급했다. 아울러 A 팀장은 여신서류도 직접 위·변조해 가계대출을 부당 취급했다. 이 같은 부당대출은 총 291건에 달한다.
농협은행에서는 지점장과 팀장이 브로커와 공모해 허위 매매계약서를 근거로 감정평가액을 부풀렸다. 감정평가액 부풀리기는 곧 대출한도 확대로 이어지는데, 은행원이 금품수수를 대가로 이를 눈감아준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농협은행 B 지점장과 C팀장은 브로커·차주와 공모해 허위 매매계약서를 근거로 감정평가액을 부풀리고, 여신한도·전결기준을 회피하기 위해 복수의 허위차주 명의로 분할 승인하기도 했다. 이 같은 방법으로 총 649억원(90건)의 부당대출을 내어줬으며, 일부 대출에는 차주 등으로부터 금품 1억 3000만원을 수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시설자금 대출금을 시설공여자가 아닌 브로커·차주 계좌로 지급하거나, 운전자금 대출 취급 후 대출금 사용내역표를 점검하지 않는 등 사후관리도 소홀히 했다. 이 여파로 총 226억원의 대출금이 용도 외로 유용됐다. 통상 운전자금은 대출실행 3개월 내로 차주에게 대출금 사용내역표를 제출받아 점검해야 하는데, 이를 방조한 셈이다.
금감원은 브로커와 짬짜미하는 식의 부당대출이 유독 확대된 이유로 '단기성과 중심의 KPI'를 비롯, 내부통제 경시문화, 금융사고에 온정적인 대응 등을 꼽았다. 특히 KPI 평가방식이 유독 부각됐다. 은행원 개인의 금품·향응 문제도 있지만 실체는 'KPI' 평가방식에 있다는 게 당국의 시각이다. 실제 일부 은행에선 KPI상 낮은 배점을 받은 건전성 항목을 높은 배점을 받은 수익성에서 메꾸는 식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두 은행은 거듭된 금융사고에도 불구 영업점 감사를 비롯해 당국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국민은행의 경우 영업점에 대한 내부 감사 주기를 일률적으로 3년으로 운용하고, 감사 기간도 3~4영업일에 그쳤다. 당국 요청에 따라 사실상 형식적인 감사를 펼쳤다는 평이다. 아울러 과거 발생한 금융 사고 위주로 사고 위험 분석이 이뤄지다 보니 이 같은 새로운 수법의 금융 사고를 조기에 탐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은행은 금융사고에도 불구 당국에 보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금감원은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구현을 위해 건전성·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고 법규 위반 사항에 엄정 제재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2024년 정기 검사 대상이 아닌 지주·은행도 자체 점검계획을 올해 업무 계획에 반영하는 등 자체 감사를 내실 있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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