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진현우 기자]정치권에서 제왕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대통령제를 개혁하기 위한 개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조기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내 비명(비이재명)계 인사들이 개헌론을 강조하고 나섰다.
비명계에서 차기 민주당 내 대권 주자로 유력한 이재명 당대표를 견제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개헌을 꺼내들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이 대표나 친명(친이재명)계 지도부에서는 개헌과 관련한 어떤 입장도 나오지 않아 향후 개헌을 둘러싼 야권 내 움직임이 관심이 모아진다.
'친문(친문재인)계 적자'로 꼽히는 김경수 전 경상남도지사는 이날 오전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프로그램에 출연해 "개헌은 국가 대개조를 위해 필수적인 과제 중에 하나"라며 "차기 정부가 출범하기 전 '계엄 방지 개헌'과 같은 원포인트 개헌이라도 반드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지사는 "전시나 준전시면 충분한데, 평시에도 대통령의 판단에 따라서 계엄을 발동할 수 있도록 만든 건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별로 없는 것 같다"며 "군통수권을 갖고 있는 대통령에게 광범위한 권한을 주는 것은 앞으로는 (없어야 한다)"고 개헌의 당위성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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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사진 오른쪽)가 지난해 12월 5일 오후 국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난 뒤 나와 인사하고 있는 모습./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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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비명계 대권 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김부겸 전 국무총리도 이날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프로그램에 출연해 "개헌이라는 사회적인 합의를 새로 만들어 침체된 전체 산업을 반등시켜야 한다"고 개헌의 필요성을 밝혔다.
친노(친노무현)계 핵심 인사인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도 전날 자신의 SNS를 통해 "51 대 49의 피투성이 선거가 아닌 70 대 30의 국민연대로 나아가야 한다"며 "대선 승리를 위해 개헌을 능동적으로 밀고 가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비명계 인사들이 잇달아 개헌 담론을 꺼내들고 나온 것은 비상계엄 사태 정국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부분의 민주당 지지층이 현 사태를 '내란'으로 규정하고 있는 만큼 이 대표와 각을 세울 수 있는 것은 정치 개혁의 핵심인 개헌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정대철 헌정회장을 비롯한 전직 국회의장과 정당 대표 등 정치권 원로들도 지난 3일 회동을 열고 "권력을 분산하는 쪽으로 통치 구조를 개편하는 원포인트 개헌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여권에서도 이 대표를 겨냥한 듯 주호영 국회부의장을 위원장으로 두는 당내 자체 개헌특위를 구성하고 행정과 입법 권력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원식 국회의장에게도 (국회 내) 특위를 만들어 개헌을 하자고 여러 차례 말했는데 이 대표의 눈치를 보는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며 "역대 의장과 원로 의원들이 개헌론에 불을 지폈고 여론이 뒷받침된다면 이 대표도 개헌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정치권 내부에서 개헌론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지만 이 대표는 탄핵 정국에서 개헌에 관한 명확한 입장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개헌과 관련한 취재진 질문에 "지금은 내란 극복에 집중할 때"라고 즉답을 피했다.
이날도 이 대표는 국회에 국내 4대 그룹 관계자들과 '트럼프 2.0 시대 핵심 수출기업의 고민을 듣는다' 간담회를 열고 비상계엄 이후 어려워진 민생·경제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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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트럼프 2.0 시대 핵심 수출기업의 고민을 듣는다"란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이한주 민주연구원장·이재명 대표·진성준 정책위의장, 김원준 삼성글로벌리서치 소장, 송경열 SK경영경제연구소 소장, 윤창렬 LG글로벌전략개발원 원장.2025.2.5./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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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는 과거 기회가 있을 때마다 4년 중임 대통령제를 도입하는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2022년 대선 후보 당시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는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바 있고 2년 전 신년 기자간담회에서는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꿔 책임 정치의 실현과 국정 연속성을 높여야 한다"며 자체 개헌안을 제출하겠다는 뜻까지 밝혔지만 실제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전문가는 조기 대선이 열릴 경우 이 대표의 집권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황에서 이 대표가 개헌 드라이브에 나설 수 있지만 실제 개헌 관련 논의는 국회에서 집중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개헌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내다봤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미디어펜과의 통화에서 "지난 1987년 개헌 당시에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1988년 퇴임을 약속했던 만큼 6.29 선언이 있었다 하더라도 사실상 임기 말에 개헌이 이뤄진 것이나 다름 없다"며 "만약 이 대표가 집권을 하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개헌을 추진할 수 있지만 현대 정치사를 돌이켜본다면 그럴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디어펜=진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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