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진현우 기자]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이 종점으로 향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오는 25일 윤 대통령과 국회 측의 최후진술을 들은 이후 오는 3월 중 최종 선고를 내릴 것으로 보인다.
최종변론에서 양측은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인 △비상계엄 선포 요건 준수 여부 △야당 의원 등 정치인 체포 지시 여부 △국회 내 의원 끌어내기 지시 여부 등을 놓고 마지막 공방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는 전날까지 16명에 대한 증인신문을 마치고 21일 재판관 평의에 나섰다. 이어 오는 25일 조사하지 못한 증거들을 살핀 후 양측의 최후진술을 들을 예정이다. 최후진술에는 시간 제한이 따로 적용되지 않을 예정이다.
윤 대통령 측과 국회 측이 가장 첨예한 다투고 있는 쟁점 중 하나는 윤 대통령과 계엄에 참여했던 인사들이 비상계엄 선포 요건을 제대로 갖췄는지에 대한 여부이다. 윤 대통령 측은 야당의 국무위원 줄탄핵·일방적인 예산 삭감 등이 국정 마비를 초래했고 이는 국가비상사태에 준하기 때문에 비상계엄 선포 요건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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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10차 변론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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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계엄 선포 전 윤 대통령과 국무위원이 모인 것도 '비상 국무회의'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헌법 89조와 계엄법 2조에는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보고 있다.
반면, 국회 측은 행정부 견제를 위해 헌법에 부여한 탄핵소추권·예산심의권을 사용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비상계엄 선포 전 윤 대통령과 국무위원이 모인 것도 국무회의에 필요한 △의안 사전 검토 △회의록 작성 △부서(대통령의 국법상 행위에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이 서명하는 것) 등이 생략됐다는 점을 들어 국무회의가 아닌 단순 '국무위원 간담회'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날 마지막 한덕수 국무총리를 상대로 진행된 증인진술에서도 비상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 요건 성립 여부를 두고 양측의 공방이 이어졌다.
윤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비상시 국무회의는 평상시 정례 국무회의와 동일한 형태로 소집되고 개의될 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 1993년 금융실명제 도입을 위한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명령 당시에도 각 부 장관이 사전 통보를 받지 못했으나 (헌법재판소로부터) 전부 합헌이라는 결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회 측 대리인단은 "최상목 당시 경제부총리와 조태열 외교부 장관 등 대부분의 국무위원들이 수사 과정이나 국회 국정조사 특위 과정에서 안건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모임 전) 안건에 대한 심의 과정이 없었다고 진술했다"고 반박했다.
한 총리는 시종일관 국회 측과 윤 대통령 측의 국무회의 요건 관련 질의에 대해 "개인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며 "사법부 및 수사 절차를 통해 (국무회의 성립 여부가) 결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또 하나의 쟁점은 비상계엄 당일 야당 정치인 등을 체포하라는 윤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는지 여부와 이와 관련해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작성한 메모의 신빙성 여부다.
국회 측은 지난 18일 9차 변론기일 증거조사 중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의 수사시관 진술 내용을 공개했다. 해당 진술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등 14명을 체포하라는 지시는 윤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됐다는 취지의 내용이다. 당초 체포자 명단은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이 여 전 사령관에게 전달한 후 홍장원 당시 국정원 1차장, 조지호 경찰청장, 방첩사 체포조 등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진 것과는 다른 내용이다.
특히 홍 전 차장의 경우 최초에는 여 당시 사령관으로부터 계엄 당일 밤 11시6분 국정원장 공관 입구 공터에서 체포자 명단을 받아적은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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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 비상계엄 당시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과 통화한 내용을 정리해서 기록한 메모./사진=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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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홍 전 차장은 전날 2차 증인신문에 참석해 기존 진술을 정정해 "기억을 고증해보니 처음 여 당시 사령관이 체포자 명단을 불러주겠다고 했던 건 공터에 있는 밤 10시58분 상황이었던 것 같고, 이후 명단을 적은 곳은 밤 11시6분에 사무실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홍 전 차장은 전날 증인신문에서 밤 11시6분 작성한 1차 메모에는 10~12명의 이름을 받아적은 후 급하게 적어 알아보지 못해 자신의 보좌관에게 "한번 정서해보라"고 지시한 후 보좌관으로부터 인적사항이 포함된 2장 분량의 2차 메모를 받고 1차 메모는 폐기했다고 밝혔다.
이어 계엄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오후 4시 해당 보좌관에게 2차 메모를 보지 않고 기억에 의존해 체포자 명단을 복기하라고 지시했고 이렇게 3차 메모를 만들었다고 진술했다. 언론에 알려진 '홍장원 메모'는 3차 메모로 알려져 있다.
윤 대통령 측은 "12월3일이면 겨울인데 바깥에서 메모한다는 것은 이례적이고 추운 상황이었을 수 있다"며 "장소를 혼동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메모의 신빙성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홍 전 차장은 "결국 (메모 작성이) 이뤄진 것은 국정원 청사 내"라며 "시간은 통화 내역으로 이미 정해져 있고 사무실에서 관저까지 짧은 거리 내에서 이뤄졌다면 (작성 장소가) 어디라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라고 신빙성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이 계엄 당일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에 모인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가 있었는지 여부도 핵심 쟁점 중 하나이다. 검찰 조사에서 조지호 경찰청장은 계엄 선포 이후 윤 대통령의 전화를 받았다면서 "(윤 대통령이) 나에게 '조 청장! 국회에 들어가는 국회의원들 다 잡아. 체포해. 불법이야'라고 했고 뒤의 5회 통화 역시 같은 내용이었다"고 진술했다.
조 청장은 현재 내란중요임무수행 혐의로 형사 재판을 받고 있다. 혈액암 투병 중에도 전날 증인신문에 출석한 조 청장은 "공소사실과 관련된 부분은 증언할 수 없다"면서도 '검찰 조사에서 사실대로 진술했는가'라는 국회 측 대리인단의 질문에 "조서별로 (검토 후) 다 서명·날인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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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2월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10차 변론에 출한 가운데 정청래 위원장을 비롯한 국회 탄핵소추위원들이 취재진에게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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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윤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조 청장에게 "경찰·검찰 조사 당시 섬망 증세가 있다거나 그런 건 없었는가"라고 물었고 조 청장은 "섬망 증세가 있었거나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 부인했다. 건강상의 이유를 들며 조 청장 진술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기 위한 윤 대통령 측의 의도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면서 늦어도 다음 달 중순까지는 최종 선고가 나올 것이라는 것이 법조계 중론이다. 하지만 결과를 두고서는 다소 엇갈린 전망이 나온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디어펜과의 통화에서 "재판관들 입장에서는 탄핵 심판 결정을 내리기 위한 기본적인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거의 확정을 한 것 같다"며 "윤 대통령 측에서는 (주요 쟁점에 대해) 제대로 부정하지 못한 것 같다"고 탄핵 인용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법조계 관계자는 "재판은 마지막까지 가 봐야 하는 것"이라며 "재판관 성향상 심리 이후 최종 결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오는 경우가 꽤 있다"고 의외의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미디어펜=진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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