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칩·광학·포토닉스 설계 소프트웨어시장 경쟁제한 우려
공정위, 기업결합 완료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 매각해야
기업이 직접 제출한 시정방안 고려, 심사한 첫 사례
[미디어펜=이소희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반도체 칩 설계 소프트웨어 광학 및 포토닉스 설계 소프트웨어 사업체로 미국에 본사를 둔 시높시스와 앤시스의 기업결합에 대해 관련 자산매각을 조건부로 승인했다. 

   
▲ 반도체 칩 설계 IP와 소프트웨어./자료=공정위


공정위는 반도체 칩과 광학 및 포토닉스 제품 설계를 위해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소프트웨어 시장에서의 가격인상 등을 우려해 시높시스와 앤시스의 자산 매각을 통한 기업결합으로 시장 보호를 결정했다.

이는 시높시스가 앤시스의 주식 전부를 약 350억 달러, 약 50조 원에 인수하는 내용의 기업결합을 공정위에 지난해 5월 신고함에 따라 심사가 진행됐다. 

인공지능(AI) 반도체의 부상, 공급망 재편 등의 상황 속에서 국제적으로 치열하게 경쟁 중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칩 사업자 등의 피해를 미연에 방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공정위는 시높시스 인코포레이티드가 앤시스 인코포레이티드의 주식 전부(약 350억 달러, 약 50조 원)를 취득하는 기업결합에 대해 시높시스와 앤시스의 자산 일부를 매각하는 것을 조건으로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번 기업결합은 시높시스와 앤시스 간 결합으로, 양 사 모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사업자들이 반도체 칩 혹은 빛을 이용하는 다양한 제품을 설계하는 소프트웨어를 공급하고 있는 만큼 국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특히 시높시스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을 대상으로 반도체 칩을 이루는 표준화된 구성요소인 설계 IP(Intellectual Property)도 공급하고 있다.

공정위는 심사 과정에서 국내외 다양한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의견을 청취하고, 관련 전문가들의 기술적 자문을 받는 한편, 이번 기업결합이 국제기업결합임을 감안해 유럽연합, 영국, 미국 등 해외 경쟁당국과도 긴밀하게 협력해 면밀한 심사를 진행했다고 전했다.

공정위는 반도체 칩 설계 과정 중 하나인 레지스터 전송 수준 전력 소비 분석을 위한 소프트웨어, 카메라렌즈 등 광학 제품 설계를 위한 소프트웨어, 태양광 패널 등 포토닉스 제품 설계를 위한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경쟁이 제한될 가능성을 중점적으로 심사했다. 세 시장은 공통적으로 시높시스와 앤시스의 사업 영역이 중첩돼, 이른바 수평결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번 기업결합 이후 관련 시장에서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일방적인 가격 인상, 거래조건의 불리한 변경 등 경쟁을 제한할 우려가 높다고 공정위는 판단했다.

우선 이번 기업결합 이후 세 시장에서 시높시스와 앤시스가 합산 점유율이 과반을 훌쩍 넘어, 시장지배적 지위를 가지게 된다는 점이 고려됐다. 합산 점유율은 분야에 따라 55~100%에 이른다. 

또한 종전에 시높시스와 앤시스 사이에 존재하던 직접적인 경쟁이 사라지는 점, 시높시스와 앤시스로부터 제품을 구매하는 국내외 고객사들도 이번 기업결합으로 인해 선택지가 축소되고 시높시스와 앤시스에 종속될 가능성이 높은 점, 세 시장 모두 고도의 기술력을 요해 신규 경쟁자가 진입하기 용이하지 않은 점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됐다.

이 외에도 이번 기업결합으로 혼합결합이 발생하는 시장에서 시높시스와 앤시스가 경쟁사업자를 배제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전략의 실현 가능성 역시 검토했다.

하지만 시높시스와 앤시스는 여러 전략을 사용할 능력 혹은 유인이 없고, 설령 전략을 실행하더라도 실제 경쟁사업자 배제 효과 발생 가능성은 없다는 점 등이 감안돼 경쟁제한 우려는 없다고 종합적으로 판단됐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이번 기업결합으로 인한 레지스터 전송 수준 전력 소비 분석 소프트웨어, 광학 소프트웨어, 포토닉스 소프트웨어 시장의 경쟁제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각 시장별로 시높시스 혹은 앤시스의 관련 자산 일체를 매각토록 했다.

레지스터 전송 수준 전력 소비 분석 소프트웨어 시장에서는 앤시스와 그 계열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관련 자산 일체를, 광학 소프트웨어와 포토닉스 소프트웨어 시장에서는 시높시스와 그 계열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관련 자산 일체를 매각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시높시스와 앤시스는 계열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관련 자산 일체를 특수관계인이 아닌 제3자에게 이번 기업결합이 완료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매각해야 한다.

실제 6개월 내에 매각이 어려운 상황에 대해서는 공정위와 협의해 우선 매수 주체가 경쟁제한을 해소하는 사업자인지를 판단하고, 매각이 지연될 경우는 추가적으로 기간을 연장하는 명령을 별도로 받아야 한다. 

이번 자산 매각 조치의 내용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공정위는 지난해 8월 공정거래법에 도입된 이른바 ‘기업결합 시정방안 제출제도’를 처음으로 활용했다.

기업결합 시정방안 제출제도는 공정위가 시정조치를 부과함에 있어 기업결합의 당사자인 기업에게 경쟁제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시정방안을 제출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공정위는 이를 참고해 시정조치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공정위는 경쟁제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시높시스와 앤시스가 자산 매각 내용을 담아 직접 제출한 시정방안을 참고하고, 일부 부분매각 대상 자산에 시높시스와 앤시스의 ‘계열회사’가 보유한 자산과 매각 대상 자산에 시높시스, 앤시스가 경쟁사와 체결한 상호운용성 관련 계약을 추가하는 등의 수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자산 매각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정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시높시스, 앤시스, 경쟁사, 고객사가 보유한 풍부한 시장 정보를 바탕으로, 효과적으로 경쟁제한 우려를 해소하면서도 시장에서 충분히 수용가능한 시정조치를 설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면서 “첫발을 내딛은 기업결합 시정방안 제출제도가 보다 활발하게 적용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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