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은행권의 수수료 인상 움직임이 가시화된 가운데 씨티은행의 '계좌유지수수료'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휴면계좌 유지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게 은행들 입장이지만 고객들 반발이 매우 거셀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휴면계좌가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도 지적돼 '어카운트인포' 서비스 등을 통한 고객들의 적극적인 관심이 요청되고 있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씨티은행(은행장 박진회)이 계좌유지수수료 도입을 검토 중이다. 계좌유지수수료란 말 그대로 은행고객이 계좌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부과되는 수수료다.
은행들은 계좌관리에도 '비용'이 들기 때문에 계좌유지수수료 부과에 나름의 정당성은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이미 도입된 제도이기도 하다. 통상 일정기준 이하의 잔액을 예치하고 있는 통장 보유자에게 관리비용 성격으로 부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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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권의 수수료 인상 움직임이 가시화된 가운데 '계좌유지수수료' 도입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미디어펜 |
현재 한국인 성인 1인당 보유하고 있는 은행계좌는 평균 5.4개다. 1년 이상 거래가 없는 '장기 미사용계좌'는 전체 계좌의 절반 정도인 1억 700만 개로 일본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 중이다.
이들 휴면계좌에 예치된 금액은 약 5조 5000억 원이다. 모아놓으면 큰돈이지만 1인당 평균으로 환산하면 15만원 꼴이다. 그나마 여러 개의 통장에 분산돼 있기 때문에 금융소비자 개개인으로서는 크게 관심을 가질 만한 금액은 아니다. 그러나 은행들은 이 금액을 계속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발생한다.
몇몇 언론에 의해 계좌유지수수료 도입 검토 내용이 알려지자 씨티은행은 다소 부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이날 한 관계자는 "금액 기준이나 도입 시기 등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나오고 있지만 정해진 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내부적으로 논의가 나온 정도일 뿐 아직까지는 도입 여부조차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내부 논의나마 진행됐다는 사실 자체가 '수수료'에 대한 은행들의 달라진 입장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초저금리 시대의 장기화로 순이자마진(NIM)을 통한 이익추구가 힘들어지면서 은행들로선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수익추구 수단인 수수료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이미 신한은행, KEB하나은행, 국민은행 등은 작년부터 송‧예금, ATM, 외환 관련 수수료를 차례로 인상했다.
문제는 금융소비자들의 반발이다. 이미 현재까지의 수수료 인상에 대해서도 금융권 시민단체들은 거센 비판을 하고 있다. 금융소비자원, 금융소비자연맹 등은 나란히 '은행권이 수익성 악화와 구조조정 문제 등 자신들의 위기를 금융소비자들에게 부담으로 전가시킨다'는 입장이다.
나아가 계좌유지수수료는 통장에 예치된 잔액이 일정금액 이하인 소비자들에게 부과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약자에게 불이익을 준다'는 비판에도 직면하게 된다. 지난 2001년 SC제일은행이 계좌유지수수료를 도입했지만 이와 같은 문제 때문에 이내 철회했던 사례가 있다.
한편 최근 '은행권 수수료 체계를 점검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황급히 "사실무근"이라며 진화에 나섰던 금융당국은 이번 문제에 대해서도 표정관리를 하고 있다. 불과 1년 전에 "수수료 책정은 은행들의 몫"이라고 공언한 만큼 현 시점에서 적극적으로 발언하기는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다만 금융위원회 한 관계자는 "휴면계좌가 너무 많다는 인식에는 충분히 동의한다"며 은행권의 애환에 공감을 표시했다.
이 가운데 오는 12월 금융결제원은 어카운드인포(Account info) 서비스를 출시해 은행 고객들의 휴면계좌 관리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어카운트인포는 본인명의로 개설된 계좌의 은행명, 계좌번호, 장기 미사용 여부 등 이용 상황을 한눈에 조회할 수 있는 서비스다.
고객들이 미사용 계좌를 방치하고 있는 데에는 '현재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이유가 크다. 따라서 어카운트인포가 도입되면 휴면계좌 정리가 매우 편리해질 것으로 보인다. 계좌유지수수료가 도입되더라도 본격적인 논의 시점이 어카운트인포 출시 이후부터라면 고객들로서는 휴면계좌를 정리할 인센티브와 함께 '대안'도 갖게 되는 셈이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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