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병철 회장, 오쿠라호텔서 많은 영감...'베이지' 일관되게 사용, 명품 브랜드처럼 호텔 관리
   
▲ 서울신라호텔 로비. 박선기 작품이 걸리면서 신라호텔 방문객들의 인증샷 명소가 됐다./미디어펜

[미디어펜=김영진 기자] 신라호텔과 웨스틴조선호텔의 공통점은 범 삼성가에서 시작됐다는 점입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신라호텔(호텔신라)은 삼성그룹 계열사로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1973년 국빈 전용 숙소인 영빈관을 국가로부터 인수하면서 호텔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신세계조선호텔)은 1910년대 일제시대때 지어졌는데 광복이후 화재로 건물을 신축하게 됐고 주인도 한국관광공사, 웨스틴 등으로 변경된 이후 1983년 삼성그룹에서 이 호텔을 인수했습니다. 이후 1991년 신세계가 삼성으로부터 계열분리 되면서 신세계그룹 소유가 됐고 1995년 신세계그룹이 웨스틴의 투자지분을 완전히 인수했습니다. 

신세계조선호텔 측은 가끔 자신들을 "100년 이상 호텔을 운영한 기업"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조선호텔이라는 이름이 100년 이상 된 것이지 신세계조선호텔이 100년 이상 호텔을 운영하지는 않았습니다. 

신라호텔, 신세계조선호텔에 이어 범 삼성가 중에는 CJ그룹도 경기도 일산에 조성하는 'K컬처밸리'내에 호텔을 지어 직접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결국 범 삼성가에서는 신라-신세계-CJ가 호텔을 운영하는 셈입니다. 한솔그룹에서도 강원도 원주에 오크밸리 리조트를 운영하고 있기는 하지만 호텔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신라와 신세계 이어 CJ그룹도 호텔업 진출

그렇다면 신라와 신세계, CJ 등을 관통하는 삼성가의 호텔 DNA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CJ는 아직 호텔을 완공하지도 않아 뭐라 말하기 힘들지만 삼성의 DNA를 곳곳에 많이 넣을 것으로 보입니다.

삼성가의 호텔 DNA는 고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이 회장은 일본 도쿄의 오쿠라호텔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일본에 갈 때는 오쿠라호텔을 자주 찾았고 매해 신년을 오쿠라호텔에서 하얀 눈을 보며 맞이했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 회장은 1983년 삼성의 반도체 사업 진출도 오쿠라호텔에서 발표했었습니다. 

그는 서양식 건축미학과 일본적인 전통미를 겸비한 오쿠라호텔에 큰 매력을 느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90년대 삼성전자의 애프터서비스에 친절함(hospitality)을 넣어 소비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던 것도 오쿠라호텔에서 배운 서비스 마인드가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삼성그룹에 있어 신라호텔은 매출로 보면 정말 미미한 곳이지만, 삼성그룹의 정신적 모태가 있는 곳이 아닌가 감히 말해봅니다. 신라호텔 뒤편 조각공원 양지바른 곳에는 이 회장의 동상이 모셔져 있기도 하죠.   

이 회장은 신라호텔을 지을 때에도 오쿠라호텔과 제휴해 시설과 서비스 등의 노하우를 전수 받았습니다. 건축설계도 일본의 다이세이건설에 맡겼다고 합니다. 개관당시 서비스 노하우가 부족한 신라호텔은 오쿠라호텔에 매출액의 1%, 영입이익의 4.5%선에서 위탁경영을 맡기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신라호텔과 오쿠라호텔과의 관계는 지속되고 있습니다. 신라호텔의 도쿄사무소가 오쿠라호텔 내에 있습니다. 또 오쿠라호텔 홈페이지를 통해 신라호텔을 예약할 수도 있습니다. 분기마다 일본인 플라워리스트가 신라호텔을 방문해 꽃 장식을 하고 갑니다. 신라호텔에서 일본적인 색깔이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서울신라호텔 로비라운지 더 라이브러리./사진=미디어펜
고 이병철 회장, 오쿠라호텔에 큰 매력, 신라호텔 지을 때 자문 얻기도

장충동 신라호텔은 1979년 개관한 이후 수많은 경쟁 호텔들이 생겨났지만 여전히 최고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신라호텔에 들어서면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모던함과 클래식함이 공존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개인적으로 신라호텔이 가진 이런 모던함과 클래식함은 어떤 것일까 고민해 봤습니다. 결론은 '베이지(beige)' 혹은 '베이직(basic)'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신라호텔에는 일관되게 베이지색과 브라운색을 사용합니다. 호텔 인테리어나 직원들의 유니폼 등은 모두 베이지색과 브라운색의 조합입니다. 계단도 베이지색의 나무소재를 사용했습니다. 특히 신라호텔에서 제공하는 슬리퍼, 종이, 타월 등은 흰색이 아닌 베이지색입니다. 여타 호텔들이 타월, 슬리퍼 등을 흰색을 쓰는 것과 매우 대조되는 지점입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에서 만든 '르베이지'라는 브랜드도 이런 삼성가의 DNA로 만들어진 브랜드가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일관된 색을 유지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명품 브랜드들이 명품으로 불릴 수 있는 배경 중 하나는 일관된 색이 있기 때문입니다. 에르메스하면 떠올리는 오렌지색, 샤넬하면 떠올리는 검정색 등 색깔의 일관성은 브랜드 관리에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신라호텔과 거의 동시에 지어진 소공동 롯데호텔도 반도호텔 자리에 건설 당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이태리 대리석 등 값비싼 건자재들을 수입해 호텔을 지었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신라호텔보다 더 고급호텔이라고 부르기는 힘들 것입니다. 

롯데호텔의 색깔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샴페인 골드'라고 하네요. '샴페인 골드'가 어떤 색인지도 잘 떠오르지도 않지만, 롯데호텔을 이용하면서 일관된 색깔을 느끼지 못했다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신라호텔과 롯데호텔의 평가를 엇갈리게 한 요인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요. 일관된 색을 유지하는 것은 명품 브랜드 관리하는 만큼 매우 어렵고 중요한 일입니다. 

이런 신라호텔의 '베이지' 혹은 '베이직'은 신세계조선호텔 또는 신세계백화점 등 신세계그룹에도 느낄 수 있습니다. 웨스틴조선호텔 로비에 들어서면 브라운색의 헨리 무어의 작품이 고객들을 가장 먼저 맞습니다. 베이지색과 브라운색을 적절히 섞은 인테리어와 섬세한 조명을 보면 삼성가의 섬세한 예술적 감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서울신라호텔의 페스트리 부티크 매장./사진=미디어펜

신라-신세계 관통하는 DNA는 '베이지' 혹은 '베이직'

신세계백화점 명품관(본관)은 베이지색의 벽에 마치 갤러리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입니다. 신라호텔과 차이점은 좀 더 모던하고 섹슈얼리티하다고 해야 할까요. 실례로 웨스틴조선호텔은 여직원들의 유니폼 치마 절개선이 잘려져 있습니다. 하반신을 거의 노출한 여직원들이 가끔 앉아서 주문을 받을 때 난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내부 꽃 장식도 신라호텔과 달리 요염하고 화려할 때가 많습니다. 신라호텔이 일본적이라면 웨스틴조선호텔은 미국적인 것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그럼에도 양 호텔은 '베이지'라는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신세계조선호텔에서 오픈한 레스케이프호텔에게 가장 실망한 이유 역시 이런 신세계 혹은 삼성의 DNA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CJ그룹은 아직 호텔을 오픈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어떤 호텔 모습을 보여줄지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짐작컨대 CJ도 이런 삼성의 호텔 DNA를 따라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재현 회장이 거주하는 장충동 자택, 건너편에 위치한 CJ경영연구소, 제주 나인브릿지 등의 건축물만 봐도 베이지색을 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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