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근로제 유명무실화 우려…ILO 핵심협약 비준, 노사 접점 없고 공익위원안은 노동계에 쏠려
[미디어펜=김규태 기자]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빠진 채로 노동정책 사회적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22일 공식 출범했지만, 탄력근로제 확대 및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등 난제들을 놓고 해법을 찾기 어려울 전망이다.

경사노위는 앞서 보이콧을 선언한 민주노총 대표를 제외한 노동계 4명과 경영계 5명, 정부측 2명 및 경사노위 2명, 공익위원 4명 등 총 17명으로 구성됐다.

사회적대화기구인 경사노위는 향후 노동정책 전반에 걸친 논의를 본격화할 방침이지만, 가장 관심을 모으고 있는 탄력근로제 확대와 관련해 내년 1월말로 입법을 미룰 수도 있어 기업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민노총 등 노동계에서 가장 먼저 반발하고 나선 탄력근로제 확대는 '주 52시간제 시행'에 따른 위반 및 처벌 유예기간이 끝나는 내년 1월부터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마련된 방안이다.

경영계 입장에서는 300인 이상 사업장의 주 52시간제 위반에 대한 처벌 유예가 내년 1월 풀리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들은 지난 5일 여야정 상설협의체를 갖고 탄력근로제 확대에 합의했다. 그 후 여야는 연내 처리까지 약속한 상태이지만 돌아가는 입법 상황은 불투명하다.

문 대통령은 22일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와 관련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탄력근로제를 논의하면 국회도 그 결과를 기다려줄 것. 대통령도 국회에 시간을 더 달라고 부탁하겠다"고 언급해 연내 입법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평가가 커지고 있다.

또한 일각에서는 노동계가 탄력근무제 확대에 대해 임금 보전이나 장시간 금로금지 등 교환 조건을 내걸어 관철시킨다면, 사실상 탄력근무제 확대가 유명무실화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이날 경사노위 출범식에서 "경사노위가 탄력근로제를 논의한다면 장시간 노동 등 부작용을 없애는 장치와 임금을 보전하는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 노동계도 논의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말해 그 가능성을 밝혔다.

1월까지 노사정 합의안을 도출하기로 한 ILO 핵심협약 비준의 경우 탄력근로제 확대 여부보다 더 까다롭다는 평가다.

논란이 되는 협약 사안에 대해 경영계와 노동계간에 공유할만한 접점 자체가 전무하고, 경사노위가 공개한 공익위원안은 노동계측 입장에 쏠려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가 20일 공개한 공익위원안에는 '해고자나 실업자도 노동조합에 가입해 활동할 수 있도록 인정해야 한다'는 노조측 요구가 그대로 담겨있지만 '파업시 대체근로를 허용하고 노조의 직장점거를 금지해야 한다'는 사측 요구안을 담지 않아 "공익위원이 맞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공익위원안은 해고자 실업자의 노조 가입과 5급 이상 공무원·소방관, 특수고용직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면서 현행 노조설립신고제를 폐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한 노조 전임자의 임금 지급, 이를 목적으로 한 파업을 허용하는 내용도 담아 노동계에 쏠려있다. 

김삼화 바른미래당 수석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논평을 내고 "노동계가 배타적이고 경직된 권익을 내세울수록 대부분 노동자들의 권익은 더 악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노조 요구에 쏠린 공익위원안에 대해 "공익위원이라는 이름이 부끄럽다"며 "(ILO 핵심협약은) 국내법과 충돌되는 것이 너무나 많아 국민정서나 여론이 이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동근 명예교수는 "ILO는 노동착취 등 최악의 근로상황을 가정해 글로벌 스탠다드를 마련하는 등 노동만 보는 단체"라며 "정리해고가 일상회되거나 노동법체계가 불비되어 있어 근로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나라를 생각하면 경청할 여지가 있지만 우리나라 현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조 교수는 "설령 비준한다 하더라도 국내법과 부딪히는 조항의 경우 국내입법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며 "노사관행 등 노동시장 유연성이 거의 없는 현 상황에서 국내법과 충돌하는 것이 많아 우려된다"고 전망했다.

경사노위에 보이콧하고 나선 민주노총은 내부 분위기가 강경한 가운데, 내년 1월 열리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여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문 대통령은 22일 청와대에서 경사노위 1차 본위원회를 열고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면서 "경사노위에서 합의하면 반드시 실행하겠다. 저뿐 아니라 정부 각 부처가 경사노위 합의사항에 구속될 수 있게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사회적대화기구인 경사노위가 향후 2달간 탄력근로제 확대에 합의해 연착륙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사진은 11월22일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제1차 본위원회 모습./청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