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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
문화예술 마케팅에서 생산성과 품질은 불가분의 관계다. 품질과 생산성이 항상 연계되기 때문이다. 제조업을 비롯한 일반 기업에서는 '생산성'이라는 용어가 보편화되었지만,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생산성과 성과성이라는 용어를 혼용해도 별 문제가 없다. 생산성이란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의 운영 성과를 높이기 위한 마케팅 믹스 요인의 하나로, 제공하는 서비스 품질과 연계된다.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는 어떤 작품의 공연이나 전시를 기획할 때, 티켓 구매 전, 티켓 구매 중, 티켓 구매 후의 모든 과정에서 성과를 높이려고 한다. 그렇지만 성과를 높이는 데만 치중하다 보면 중요한 서비스 품질을 놓치게 되고, 그리하여 결국 고객들에게 실망감만 안겨줄 가능성도 있다.
보통 생산성(Productivity)은 재화와 용역 등의 산출물을 생산하는데 사용된 자본이나 노동 같은 투입물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 투입물을 변환시켜 산출물을 얼마나 창출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이기도 하다. 문화예술 마케팅에서는 서비스 생산성이란 말을 쓴다.
서비스 생산성은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에서 고객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고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자체적인 투입 요인을 활용하는 능력이다. 그렇지만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제조업에 비해 생산성을 높이기 어렵고 정확히 측정하기도 쉽지 않다. '산출수량 + 산출품질'을 '투입수량 + 투입품질'로 나누면 서비스 생산성의 값을 얻을 수 있다.
서비스 산업에서 생산성과 품질(Productivity-Quality)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며 항상 연계되기 마련이다. 유사해보이지만 두 개념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생산성은 효율을 추구하는데 비해 품질은 고객 만족을 더 중시한다. 생산성은 가치를 추가하는데 목표를 두지만 품질은 가치의 강화를 더 중시한다. 문화예술계에서는 오랫동안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자체가 문화예술의 특성을 거스르는 행위라고 인식하는 경우도 많았다.
사실 문화예술계에서는 제조업 분야에서 주장하는 생산성 향상 문제가 쉽지 않은 측면도 있다. 문화예술 산업에서는 생산성에 치중한 나머지 서비스 품질을 도외시하면 안 되는 까닭이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 분야에는 52분간 일하고 17분간 쉬어야 생산성이 극대화된다는 '52-17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다.
이 법칙을 문화예술 분야에 적용할 수 있을까? 생산성이 높다고 해서 문화예술 산업의 경쟁력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과 품질을 동시에 추구할 때 산업의 경쟁력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경제학자로 널리 알려진 데이비드 스로즈비(David Throsby, 1994) 호주 맥쿼리대 교수는 생산성의 차원에서 문화예술 산업이 다음과 같은 특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 문화예술 산업은 공연 횟수와 전시 횟수, 또는 입장객의 숫자로 측정하는 생산량이 증가하면 저절로 평균적인 생산비도 감소하는 자연 독점적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공연이나 전시의 횟수가 증가하면 그 공연이나 전시에 필요한 고정비의 비중은 감소하게 마련이다. 고정비의 비중이 감소하면 고객 한 사람에게 제공할 수 있는 문화예술작품에 대한 서비스의 생산 비용도 자연스럽게 감소하게 된다. 이런 경향이 문화예술 산업의 자연 독점적 특성을 나타낸다.
둘째, 문화예술 산업은 기술 발전이 더디기 때문에 다른 산업에 비해 생산성이 지연되는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보통신(IT) 산업에서는 시간의 흐를수록 기술 발전이 가속화되어 생산비를 절감하기 때문에 생산성이 향상되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문화예술 산업 분야에서는 기술 발전이 거의 없거나 느리기 때문에 생산성의 지체(productivity lag) 현상도 발생한다. 생산성만이 아닌 생산성과 품질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문화예술 산업의 특성도 생산성의 지체에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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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투란도트> 공연의 한 장면. /자료=김병희 교수 제공 |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의 오페라 〈투란도트(Turandot)〉를 예로 들어 생산성과 품질의 관계를 살펴보자. 이 오페라는 1926년에 초연한 이후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버전으로 공연되었다. 푸치니가 미완성작으로 남기고 사망하자, 그의 제자 프란코 알파노(Franco Alfano)가 마지막 부분을 완성시킨 것으로도 유명한 작품이다.
두루 알다시피 <투란도트>의 무대는 중국의 북경이다. 투란도트 공주와 결혼하려는 남자는 세 가지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고 실패할 경우에는 참수된다. 그동안 여러 남자들이 죽어나갔다. 칼라프는 투란도트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주변 사람들이 만류하는데도 그는 수수께끼에 도전한다.
희망, 피, 투란도트라는 정답 세 개를 차례로 맞춘 그는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부르며 승리를 확신한다. 핑, 퐁, 팡은 공주가 잔혹하다고 말해주며 중국에서 탈출하라고 권유하지만 그는 권유를 무시한다. 결국 공주가 패배를 선언하자 그는 사랑이 승리의 비결이었다고 고백한다. 투란도트는 부왕에게 칼라프의 이름이 '사랑'이라고 말하며 두 사람의 입맞춤 장면을 끝으로 막이 내린다.
오페라 <투란도트>를 공연하려면 투란도트 공주, 알툼(Altoum, 황제), 티무르(Timur, 타타르의 퇴위한 왕), 칼라프(Calaf, 티무르의 아들), 류(Liu, 노예 소녀), 핑(Ping, 중국의 고관), 퐁(Pong, 주방 대신), 팡(Pang, 서무 대신), 중국 관리 등 최소한 9명의 등장인물이 반드시 필요하다. 수익성이 낮은 문화예술공연에서 생산성을 높이려고 일반 기업에서처럼 출연자(근로자)를 해고하기란 쉽지 않다. 출연료를 아끼려고 출연자 수를 줄이면 공연의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오페라를 공연하면서 가장 유명한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 부분만 저명한 테너에게 맡기고, 나머지는 무명에게 맡기면 어떻게 될까? 공연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나의 말을 들어주오(Signore, ascolta, 소프라노)", "울지 마라, 류(Non piangere, Liu, 테너)", "옛날 이 황궁에서(In quest regina, 소프라노)", "처음 흘려보는 눈물(Del primo pianto, 소프라노)" 같은 대목을 무명 성악가가 부르거나 녹음한 것을 재생해 들려주면, 오페라의 느낌이나 감동이 전혀 달라질 것이다. 예산을 아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출연자 수를 줄인다면 작품의 질이 떨어진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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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맘마미아!>의 캐스팅 배우 (2019). 출처:신시컴퍼니. /자료=김병희 교수 제공 |
문화예술 공연에서의 생산성 향상 문제는 문화예술작품의 품질을 떨어뜨리지 않는 선에서 고려해야 한다. 스웨덴의 댄스 그룹 아바(ABBA)의 히트곡 22곡을 엮은 뮤지컬 <맘마미아(Mamma Mia!)>의 경우를 살펴보자.
1972년부터 1982년까지 활동했던 세계적인 팝그룹 아바는 유럽과 북미는 물론 호주의 음악 차트를 휩쓸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아바의 오리지널 음악을 작곡했던 앤더슨과 울배어스는 영국의 캐서린 존슨이 대본을 처음 쓸 때부터 함께 작업에 참여했다.
1999년 4월 6일, 런던의 프린스에드워드극장에서 초연한 이후 <맘마미아!>는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뮤지컬 역사상 가장 빨리 확산된 이 작품은 전 세계 50개의 프로덕션에서 16개의 언어로 공연되었다.
지난 2004년 1월 17일, 우리나라에서 초연할 당시에 뮤지컬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어 이 오페라의 배우를 섭외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배우들을 많이 섭외하지 못한 국내 최초의 공연에서는 영국에서의 공연과 달리 서비스 품질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후 우리나라에서 세운 기록은 놀라웠다. 지난 2004년부터 2016년까지 12년간 서울을 포함한 33개 지역에서 1622회를 공연했고 195만여 관객을 동원했다. 2019년 공연에서 <맘마미아!>는 200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다(LG아트센터, 2019. 7. 16 ~ 9. 14).
초연 때와는 달리 2019년의 공연에는 원년 멤버인 최정원, 신영숙, 김영주, 남경주, 이현우, 오세준, 호산이 출연할 예정이다. 그리고 홍지민과 성기윤은 새 캐릭터를 선보이고, 루나, 이수빈, 김정민, 박준면, 오기쁨 같은 신인들도 새로 등장할 예정이다.
지난 2004년의 초연 장면을 돌이켜봤을 때 <맘마미아!>는 장족의 발전을 한 셈이다. 생산성의 지체 현상에도 불구하고, 공연 관계자들은 생산성과 품질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소중한 가치를 놓치지 않았다. 생산성이 전부는 아니다. 문화예술 마케팅 활동에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작품의 품질을 생각하면서 정도껏 생산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김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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