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감동 저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생산성과 품질의 균형 유지해야
   
▲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문화예술작품은 '가치재(價値財, merit goods)'라는 성격을 지닌다. 가치재란 구입하기를 희망하는 물량보다 시장에 더 많이 제공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재화이다.

이 때문에 문화예술작품은 특별한 그 무엇이라는 어떤 태생적인 가치를 지니게 된다. 어떤 문화예술작품의 가격이 시장에 형성되지 않았다면 보통의 시장재(market goods)에 비해 적정한 가격을 가늠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에서는 제조업에 비해 생산성을 높이기도 어렵지만, 생산성을 관리하는데 실패할 경우에 회복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문화예술작품의 공연이나 전시에 있어서 생산성의 실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공연장의 사정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생산성의 관리에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뮤지컬 <라이온 킹>을 국내 초연했던 2006년의 공연은 처음 기대와는 달리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전석 매진으로 대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결과였다.

   
▲ <라이온 킹>의 공연 포스터 (2006). /자료=김병희 교수 제공
2006년, 세계적인 뮤지컬 <라이온 킹(The Lion King)>의 국내 공연을 앞두고 공연 관계자들은 긴장 속에서 공연을 준비했다. 일본 최고의 뮤지컬 제작사인 극단시키(劇団四季)는 대작 뮤지컬 <라이온 킹>의 한국 진출을 선언했다. 극단시키의 연매출 규모는 당시 우리나라 뮤지컬 시장의 2배에 가까웠다. 걸음마 수준이던 국내 뮤지컬 제작업체들은 극단시키를 경외의 대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당시 전문가들은 극단시키의 <라이온 킹>이 <오페라의 유령>을 제치고 역대 매출 기록을 갈아치울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렇지만 <라이온 킹>은 40여억원의 적자를 남기고 쓸쓸히 퇴장했다. 최고의 제작사에서 만든 최고의 작품이 국내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당한 것이다. 한국 최초의 뮤지컬 전용관인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했고, 가장 비싼 티켓도 10만원이 넘는 다른 뮤지컬의 티켓 값보다 저렴한 9만원으로 책정했는데도 결과는 처참했다.

1997년에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만들어진 <라이온 킹>은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꾸준히 공연되고 있다. 어린 시절에 "하쿠나마타타~"를 흥얼거리며 보던 만화 영화가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뮤지컬로 태어난 것이다.

아프리카의 대자연 속에 있는 듯한 무대 연출, 눈부시게 화려한 소품, 멋진 음악에 이르기까지, 관객들은 심바와 스카 삼촌과 함께 아프리카 밀림의 동화 속으로 떠나는 모험을 기대했으리라. 그러나 이 공연은 4개월 만에 막을 내려야만 했다. 그렇다면 <라이온 킹>이 실패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첫째,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출연 배우의 스타성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키극단은 극단에 소속된 한국인 배우들을 출연시켰다. 그들은 실력이 뛰어났을지 몰라도 국내에서는 무명이었다. 그들은 유명세보다 작품의 질로 승부하려 했지만, 우리나라의 관객들은 배우의 스타성을 중시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았다. 조승우 씨나 남경주 씨가 출연하는 공연은 작품에 관계없이 전석 매진을 기록하는 사례를 보라.

둘째, 한국의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할인 혜택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뮤지컬 소비자들은 할인받을 때 더욱 기뻐한다. 티켓 값이 워낙 비싸다 보니 할인 여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시키극단은 처음부터 티켓 값을 싸게 책정하며 추가 할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깎는 문화에 익숙한 우리나라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할인 혜택이라는 소소한 기쁨을 누릴 기회를 잃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셋째, 생산성을 높여주는 공연 일정을 체계적으로 수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오페라는 10월말에 시작해서 11개월 동안 공연할 예정으로 기획되었다. 공연 초반에는 관심을 끌 수 있었겠지만, 송년회가 많은 12월이나 가족의 달인 5월, 그리고 방학 기간이나 휴가철에는 소비자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그런 시기에도 관심을 끌만한 추가 서비스를 준비하지 않았기에 생산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 <라이온 킹>의 인터내셔널 투어 공연 장면 (2019). /사진=김병희 교수 제공

뮤지컬 <라이온 킹>은 지금 인터내셔널 투어를 진행 중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올해 공연을 마쳤다(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2019. 1. 9 – 3. 28). 지난 2006년의 공연 때와는 달리, 인터내셔널 투어에서는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일찍이 보몰(Baumol)과 보웬(Bowen)은 『공연예술: 예술과 경제적 딜레마(Performing Arts: Art and the Economic Dilemma)』(1966)라는 저서에서, 공연예술 사업은 생산성이 낮아 영리를 추구하기 어렵다며 정부에서 보조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찍이 문화예술의 생산성 실패 문제를 내다본 주장이지만, 정부의 재정 지원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문화예술의 생산성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첫째, 무엇을 하느냐에 앞서 무엇을 하지 않을까를 결정해야 한다. 몽골제국의 초대 재상이자 칭기즈칸의 책사였던 야율초재(耶律楚材, 1190-1244)의 조언은 지금 시점에서도 가치 있다. 유비에게 제갈량(諸葛亮)이라는 책사가 있었다면 칭기즈칸에게는 야율초재가 있어 대업을 이루었다고 하겠는데, 야율초재는 이런 명언을 남겼다. "한 가지 이익을 얻는 것이 한 가지 손해를 제거함만 못하고, 한 가지 일을 시도하는 것이 한 가지 일을 줄이는 것만 못하다(與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

문화예술 마케팅 활동에서도 생산성을 높이려고 자꾸 새 일을 만들어내기보다 관습적으로 해오던 불필요한 부분을 찾아내 제거할 필요가 있다. 미켈란젤로가 '다비드상'을 완성하던 날, 사람들이 어떤 방법을 썼기에 모두가 포기한 대리석으로 그토록 훌륭한 조각을 할 수 있었냐고 묻자 미켈란젤로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고 한다. "나는 돌 속에 갇혀 있는 다비드만 보고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했을 뿐입니다."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할 줄 아는 사람이 생산성도 제대로 높일 수 있지 않을까?

둘째, 서비스 품질을 위해 생산성을 얼마나 양보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의 경쟁력은 생산성만 지향한다고 해서 강화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생산성과 서비스 품질을 동시에 추구할 때 기관이나 단체의 경쟁력이 향상된다.

인간의 상상력이 구현된 문화예술은 자본이라는 척도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때로는 수요와 공급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 문화예술계의 풍토이기도 하다. 생산성을 추구하더라도 서비스 품질을 놓치면 안 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문화예술의 생산성을 높이려면 출연 배우의 가성비나 스타성을 따져봐야 한다. 티켓의 할인 혜택도 고려해 소비자들이 소소한 기쁨을 누릴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비어있는 날이 없도록 공연 일정도 촘촘히 짜야 한다.

모두 필요한 검토 사항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비스 품질의 보장이다.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에서는 생산성을 높이려고 노력하되 작품의 감동을 저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생산성과 품질 사이의 균형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정답이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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