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출 19% 비중 기간산업…윤, 국가전략회의서 모든 규제 풀라고 지시
초격차기술·투자환경·생태계 조성·한미협력 구체화·반도체 인력 양성 '지원'
미·중, 앞다투어 대규모 재정·세제 지원…미·중 뛰어넘는 '특단의 대책' 절실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반도체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반도체 전쟁에서 이기려면 민간의 혁신과 아울러 정부의 선도적 전략이 동시에 필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반도체 국가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총력전을 선언하고 나섰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월 20일 개최한 이차전지 국가전략회의에 이은 두번째 주요 첨단산업 국가전략회의를 갖고, 관계부처 장관들에게 반도체와 관련된 모든 규제를 풀라고 강력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최근 지정학적 이슈가 기업들의 가장 큰 경영 리스크가 되고 있는데, 이것은 기업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며 "국가가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긴밀한 소통을 통해서 풀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 대목이다.

윤 대통령은 이어서 "반도체 경쟁은 단순한 경쟁이 아니라 산업전쟁이며, 국가총력전"이라며 "민과 관이 머리를 맞대고 헤쳐 나가야 한다"고 강한 의지를 표출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한 메모리반도체 전문가는 반도체를 철인 3종 경기에 비유하며 "첫 종목에서 앞서 나가다가도 종목이 달라지면 해당 종목에 강한 주자로 선두가 바뀔 수 있다"며 인공지능 메모리와 같은 차세대 기술에 대한 선제적인 투자를 강조했다.

   
▲ 6월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7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모두 발언을 밝히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또 다른 전문가는 미국 국방부 DARPA(국방고등연구계획국)의 긴밀한 민관 협업 시스템과 IBM 왓슨 연구소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연구문화 사례를 소개하면서, 한국에도 적극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이날 회의에서 관련 전문가들의 토론을 들은 관계부처 장관들은 해당 의견들을 적극 반영해 정책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특히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수요자 중심의 지원서비스를 제공하고 '반도체 전략로드맵'을 수립할 것이라고 밝혔고,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대학전공자 간-산업과 대학 간-지역과 대학 간 벽을 허물고 관련 인재를 적극 양성 하겠다고 말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적재적소에 R&D를 강화하고 장기투자를 위한 중장기금융지원체계 구축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각 부처 장관들을 향해 "장애가 되는 모든 규제를 없애 달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및 산업통상자원부 실무자들에게는 "풀 수 있는 규제는 모두 풀어 달라"고 재차 당부하고 나섰다.

한국의 실정 vs 경쟁국 미국-중국의 지원 물량 공세는?

반도체는 2022년 기준 한국 수출의 18.9%를 차지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기간산업이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산업 육성 방안은 크게 초격차 기술 확보, 투자 환경 조성, 산업 생태계 조성, 국제 협력 및 인재 양성 등 4개 분야로 나뉜다.

주요 내용으로는 PIM 설계기술·첨단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 투자, 전력 반도체·차량용 반도체 등 유망 기술 예비타당성 조사, 투자세엑공제율 8→15% 상향, 정책 금융 지원, 반도체 전용 펀드 출범, 인허가 타임아웃제·용적률 완화 특례,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전력 공급 및 인허가 신속 처리, 팹리스 시제품 제작 지원 대폭 확대, 첨단반도체기술센터 민관 합동 구축, 한미 반도체 기술센터 협력 구체화, 현장 수요 맞춤형 인력 양성, 반도체 특성화 대학원 확대 등이 꼽힌다.

문제는 앞으로다. 미국과 중국의 물량전에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한국 반도체 전략이 먹힐지 미지수다.

한국이 반도체 산업에서 선도국가이긴 하지만, 세계 슈퍼파워이자 반도체 시장에서 가장 큰 손인 미국과 중국의 물량 공세에 버티고 이길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미국의 경우 반도체를 국가전략물자로 규정했고 대규모 재정 지원과 세제 혜택을 아끼지 않고 있다. 반도체 지원법 및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이를 구체화하고 있다.

이에 맞선 중국도 만만치 않다. 지난 2월 중국 정부가 발표한 '디지털 중국 건설 계획'에 따르면, 중국은 반도체 등 디지털 경제 산업을 오는 2030년까지 1경 8000조 원 규모로 키운다는 목표를 세우고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올해 들어 펼쳐진 현재까지의 상황은 한국에게 나쁘지 않다.

미중 갈등으로 글로벌 기업들이 탈(脫)중국 공급망 재편에 나서면서, 한국을 비롯한 주요 첨단산업 국가들이 반사이익을 거두고 있다.

올해 5월까지 한국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 신고액(107억 3000만 달러)이 지난해 같은 기간(76억 7300만 달러)에 비해 40% 급등하면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각종 보조금과 세금 공제 등 더 많은 인센티브가 필요한 대목이다.

윤석열 정부가 지금까지의 대책에 더해서, 선제적으로 파격적인 규제 개혁을 통해 반도체 산업의 대대적인 육성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글로벌 경쟁이 더 격화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수도권에 대한 기업 투자를 막는 규제와 고용 경직성을 푸는 것도 주요 방안 중 하나다.

정부가 발벗고 나서서 야당을 설득하고 국회의 동의를 얻어, 관계법 제도를 대대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정부가 대통령 직권으로 시행령을 손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