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최인혁 기자]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55경비단장의 관인을 대리 날인해 공문서를 제작한 것은 규정을 위반한 ‘위법’ 행위였던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법조계에 따르면 규정에 위반된 공문서는 ‘효력’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공수처가 해당 문서를 윤 대통령 체포 과정에 활용했다면 불법체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조수사본부(공수처·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국방부 조사본부)는 지난 14일, 55경비단장을 국방부 조사본부로 소환해 군사시설보호구역인 대통령관저와 그 인근에 대한 출입을 승인한다는 내용의 공문서를 자체 제작한 바 있다. 해당 공문서는 ‘별지’ 형태로 작성됐으며, 55경비단장의 관인은 공조본 수사관에 의해 ‘대리 날인’됐다.
55경비단장은 부대로 복귀한 이후 해당 문서와 상반되는 내용의 공문을 작성해 공수처로 공식 회신하면서 공수처의 ‘관인 탈취’ 논란이 발생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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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55경비단으로부터 대통령관저 출입을 승인 받았다는 근거로 제시한 공문서./사진=국민의힘 진짜뉴스발굴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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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경비단은 공식 회신 문서에서 ‘수사협조를 요청한 지역은 우리 기관에서 단독으로 출입에 대한 승인이 제한된다. 대통경호처의 추가적인 출입승인이 필요함을 안내해 드린다’라고 답했다. 55경비단이 공조본의 대통령 관저 출입 협조 요청에 응답할 권한이 없다고 밝힌 것이다.
문제는 해당 공문서가 상반된 내용이라는 것과 더불어, 공조본이 자체 제작한 공문서는 국방사무관리훈령과 육군 규정을 모두 위반한 ‘위법’문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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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경비단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부터 회신한 공문서./사진=국민의힘 진짜뉴스발굴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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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사무관리 훈령 제50조(직인의 사용)에 따르면 ‘직인은 그 직의 서리도 이를 사용할 수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공문서에 관인을 대리 서명할 수 있는 자는 관인 소유자와 그 직무대행자인 것이다.
또 국방사무관리 훈령 제8조(문서의 성립 및 효력발생)에 따르면 문서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3가지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정당한 권한 있는 공무원이 작성하고 △직무범위 내에서 공무상 작성되어야 하며 △결재권자의 결재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공조본이 생성한 문서는 군사기지보호법에 승인 권한이 없는, 공조본 수사관이 작성했고 이들이 자체 날인한 것으로 문서가 성립되기 위한 요건이 충족되기 어려운 것으로 지적됐다.
더불어 공조본 수사관에 의해 대리 날인된 55경비단장의 관인 또한 규정 위배인 것으로 확인됐다.
육군 사무관리 및 일상명령 발령 규정(육군규정151) 제46조(관인의 날인기준 및 기록유지)에 따르면 △군내에 사용되는 각종 문서는 고유명칭 관인을 날인한다 △군외에 발신(민간인 등의 행정기관)하는 각종 문서 및 보안상 필요로 하는 문서는 통상명칭 관인을 날인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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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 사무관리 및 일상명령 발령 규정 제46조 관인의 날인기준 및 기록유지./문서=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실 제공 |
공문의 수신처가 군 내부가 아닌 외부인 ‘공수처’ 또는 ‘공조본’인 만큼 해당 문서에 날인돼야 할 관인은 55경비단장(고유명칭)의 명의가 아닌 제0000부대장(통상명칭)으로 된 외부용 관인이 날인됐어야 한다는 것이다. 군은 내부에서는 고유명칭으로된 관인을 사용하지만, 부대의 규모와 기능, 특성 등이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외부에서는 숫자로 된 통상명칭으로된 관인을 사용하게 되어 있다.
즉 공조본이 지난 14일 생성한 공문서는 작성부터, 관인 날인, 관인의 종류까지 모두 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국방사무관리 훈령 제98조(문서 미등록자 등에 대한 조치)에 따르면 ‘관인(전자이미지관인을 포함한다)을 부당하게 사용한자’는 각급기관의 장이 징계 및 기타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국방부 직할 수사기관인 국방부조사본부가 포함된 공조본이 국방사무관리훈령을 위반해 공문서를 제작한 것은 ‘위법’의 소지가 다분한 것으로 여겨진다.
공수처, 자체 제작한 규정 위반 문서…허위공문서작성 처벌 단서 될 수도
공조본이 규정에 위반된 공문서를 제작한 것은 향후 이들이 허위공문서작성으로 처벌될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규정이 지켜지지 않은 공문서가 생성된 것은 관인 소유자의 의지에 반하는 문서가 제작됐다는 추론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펜이 군과 법조계를 취재한 것에 따르면 이른바 ‘괴문서’가 탄생한 배경에는 공조본이 55경비단장을 조사 기관으로 소환해 관인 날인을 종용했기 때문으로 관측됐다. 55경비단장이 충분한 절차와 법적 검토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 위압감을 느껴 공조본에 관인을 제공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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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조사본부 전경./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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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에 따르면 55경비단장은 지난 14일 국방부 조사본부에 도착한 뒤에야 공조본이 작성한 공문서에 관인을 날인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55경비단장은 뒤늦게 상급부대인 수도방위사령부 법무담당자에게 조언을 구했고, 담당자로부터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라는 원칙적인 답변을 얻은 뒤 공조본에 관인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수도방위사령부 관계자는 미디어펜에 “법무실장이 ‘개인의 의견’을 조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인 대리 날인이 불러올 파장에 대해 부대 차원에서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충분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는 55경비단장이 공조본에 관인을 제공할 당시 이를 검토할 시간과 법률적인 조력을 충분하게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으로도 읽힌다.
군 고위장교 A씨는 미디어펜과의 통화에서 “(대통령 관저를 경호하는)군인이 강압에 의해 외부인에게 관인을 탈취당했다라고 말할 수 있겠나”라면서 “(공수처가 생성한 공문서는)규정에 어긋나 존재할 수가 없는 문서이다. 관인을 보유하고 있는 부대장도 이를 모를 수 없을 것인데, 그가 위압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왜 이런 문서가 생성됐는지 납득이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헌법학자 B씨도 미디어펜과의 통화에서 공조본과 55경비단이 작성한 공문서의 내용이 상반된 것에 대해 “절차와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문서가 생성됐다면, 그것은 정상적인 상황에서 업무가 진행되지 못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대리로 관인을 날인 한 문서와 이후에 정상적으로 작성된 문서의 내용이 다르다면 관인을 날인할 당시 관인 소유자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는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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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15일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경찰 병력이 입구를 지나 관저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2025.1.15./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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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여론전·부실 영장 보완 위해 무리하게 ‘괴문서’ 생성?
괴문서가 탄생하게 된 이유로는 공수처가 수사에 대한 전문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체포영장 집행에 속도를 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공수처는 해당 문서를 통해 체포영장 집행 직전 여론전과 더불어 미흡한 영장을 보완할 목적으로 위법한 문서를 생성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 ‘진짜뉴스 발굴단’은 지난 16일 보도자료를 통해 “공수처는 협조가 어렵다는 55경비단의 회신 공문을 수신한 이후에도 언론에 ‘55경비단의 출입 허가 공문을 수신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체포영장 집행에 앞서 위조된 공문을 근거로 여론을 선동하려는 의도가 명백해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공수처가 부실 영장을 보강하기 위한 목적으로 공문서를 위조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윤 대통령 측은 공수처가 윤 대통령을 체포하기 위해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은 수색영장에는 한남동 대통령 관저, 서초동 사옥, 삼청동 가옥 세 곳의 주소지만 적혀 있고, 관저 주변과 관저 출입을 위한 경로의 주소지는 누락됐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 체포를 위해 관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군사시설보호구역의 ‘통로’를 확보해야 하지만, 공수처가 영장에 통로 주소를 누락해 이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공수처는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직전 날 체포영장 집행 통로를 확보할 목적으로 해당 지역의 경계 책임이 있는 55경비단장을 국방부조사본부로 소환해 공문서를 제작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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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22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내 공수처로 출근하다 취재진과 만나 윤석열 대통령 수사와 관련한 공수처의 입장을 밝힌 뒤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2025.1.22/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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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허위공문서작성·군사기지 보호법·불법체포’ 법적 처벌 여지 남겨
법조계에서는 공수처가 규정에 위반된 공문서를 생성한 것은 향후 법적 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최진녕 변호사는 미디어펜과의 통화에서 “체포영장의 집행이라는 것은 영장 자체도 적법해야 하지만 집행의 과정도 적법해야 한다. 목적을 위해서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 없지 않겠나”라면서 “향후 검찰에서 공수처의 영장 집행 과정에 대한 수사를 시작하고 이를 기소할 경우 공수처장과 공문서에 관인을 대리 날인 한 수사관은 처벌받을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판사출신 C변호사 또한 “관인의 소유자가 관인을 제공했다는 것은 대리 날인에 동의했다는 의사 표현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후에 발송된 문서가 앞서 관인이 날인된 문서와 완전히 상반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면 이것은 당연히 (법적)문제가 될 수 있다”라고 꼬집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군사기지법에 따르면 55경비단장이 (대통령관저)출입 승인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관인 문제를 떠나 출입 승인 권한이 없는 자에게 승인을 얻은 것부터 해당 문서가 법적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차 교수는 “체포영장 자체가 무효인 것은 아니지만, 공수처가 영장 보완을 위해 해당 문서를 작성한 것이 사실이라면 허위공문서작성,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 위반, 불법체포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미디어펜은 공수처에 ‘관인을 대리 날인 한 이유’, ‘공문서 제작 간 규정 위반 사실인지 여부’, ‘주소지 누락 의혹에 대한 사실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해 공수처 관계자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답변을 얻지 못했다.
[미디어펜=최인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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