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재편 압박 속 대응 시나리오 가동
[미디어펜=김견희 기자]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동맹국 반도체 기업에 부여해온 중국 내 공장 장비 반입 면제 조치를 철회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관련 기업들이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아울러 공급망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 마련에 주력하고 잇는 분위기다.

   
▲ 중국 시안의 삼성전자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생산공장. 사진=삼성전자 제공


23일 업계에 따르면 제프리 케슬러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차관은 최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TSMC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에 개별 라이선스 승인 체계를 적용할 예정임을 공식 통보했다. 이에 따라 이들 기업이 중국에서 운영 중인 반도체 생산시설에 미국산 제조 장비를 반입하려면 건건이 미국 정부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미 상무부는 "공장 운영 자체를 막는 것은 아니지만, 기술 유출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수출 통제 장벽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이번 조치는 미국이 중국의 기술 굴기를 본격적으로 견제하는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는 평가다. 미중 경쟁이 격화하면서 미국의 첨단 기술이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뜻이다.

앞서 지난 2022년 10월부터 미국은 첨단 반도체 장비의 대중 수출을 제한했으나, 삼성과 SK 등 동맹국 기업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포괄적 면제(Blanket waiver) 조치를 적용해왔다. 삼성전자는 시안에서 낸드플래시 그리고 쑤저우에서 패키징을, SK하이닉스는 우시에서 D램을, 충칭에서 패키징 그리고 다롄에서 낸드플레시를 생산하고 있다.

◆ "K-반도체 영향 제한적...그러나 구조조정 불가피"

이번 미국 반도체 설비 반입 규제 강화가 국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두 회사의 전체 범용제품 생산량에서 중국 생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30~40% 안팎으로, 부가가치가 낮은 제품이 주를 이루는 데다가 관련 기업에서 대응할 수 있는 여력과 시간이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중국 내 공장 확장·장비 반입 제한은 지속해서 언급돼 왔던 사안이라 기업들이 대책을 세울 수 있는 시간이 존재했다"며 "미국산 장비 반입 제한 조치로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엄청나게 큰 타격은 없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내 양대 반도체 기업들은 안정적인 공급망 관리와 기술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각도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번 조치로 인해 일본 및 유럽계 장비 업체와 협력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도 높다. 삼성전자는 일부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와 테스터 장비의 조기 확보에 돌입한 한편, 중국 생산라인에 대한 재조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규제 리스크를 염두에 두고 일부 차세대 공정용 핵심장비를 조기 발주하거나 재고를 확보하는 식이다. 아울러 향후 낸드 물량의 일정 부분을 조정해 국내 평택 캠퍼스와 미국 테일러 공장으로 이전하는 것도 가능한 시나리오다. 

SK하이닉스 또한 미 정부의 라이선스 심사 과정에 대비한 별도 대응 시나리오를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시 라인의 저사양 공정 전환과 후공정 분산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국내 기업들이 중국 공장에 최신 설비 투자는 진행하지 않고중국 공장에서 서서히 손을 떼는 수순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단순 장비 수출 규제를 넘어 미중 전략 경쟁 구도에서 동맹국 기업들까지 전방위적인 영향권에 들어왔다"며 "국내 기업들은 생산 거점 다변화와 기술 독립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며, 한국과 미국으로 분산하는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불확실성 속에 정부도 외교적 대응에 적극 나서고 있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번 미국 워싱턴 DC 출장을 통해 미 무역대표부(USTR) 및 상무부 고위 관계자들과 만나 예측 가능한 비즈니스 환경이 유지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계획이다. 특히 정부는 기존 면제 조치의 단계적 연장과 동맹국 차원의 조율을 통해 공급망 불안 요인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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