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TSMC·마이크론에 지분 요구 확대 가능성
미국 정부 이사회 진입시 기술정보 요구·경영 개입 우려
현실성 낮아...인텔 밀어주기용 협상 카드 가능성 커
[미디어펜=김견희 기자]미국 정부가 반도체지원법(칩스법) 지원금을 받는 반도체 기업의 지분을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업계에 적잖은 파장이 예고된다. 삼성전자, TSMC, 마이크론 등이 잠재적 대상으로 거론되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정책의 실행 여부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건설 중인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 모습./사진=삼성전자 제공


1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칩스법 자금을 받은 기업들에 대해 정부가 일정 지분을 확보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상무부는 반도체 및 칩스법에 의해 조성된 527억 달러 규모의 자금 운용을 책임지는 행정부다. 이 논의에는 스콧 베슨트 재무장관도 참여 중이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조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말 삼성전자에 47억5000만 달러, 마이크론에 62억 달러, TSMC에 66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 지급을 확정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 전면 재검토 입장을 유지하며 보조금 지급이 지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에 미국 정부가 내세운 모델은 인텔에 지원금을 제공하는 대신 지분 10%를 확보하는 안을 미국 내 투자하면서 보조금을 받는 반도체 기업 모두에게 확대,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러트닉 장관은 경영권 침해 우려가 제기될 것을 고려해 먼저 "정부가 직접 경영에 개입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보조금 투자를 투자로 전환하려는 시도 자체가 보편적이지 않다는 시장의 비판이 이어진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 달러(23조 원)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으며, SK하이닉스는 2028년 가동을 목표로 인디애나주에 고대역폭메모리(HBM) 패키징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만약 미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지분 확보를 요구한다면, 현지 시장 확대와 미 정부와의 관계 유지를 위한 선택을 강요받을 여지도 있다. 

반도체 뿐만이 아니다. 미국 정부의 산업 개입은 날이 갈 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기존의 세제 혜택과 보조금 지급뿐만 아니라 수준을 넘어 대중(對中) 수출세 부과, 지분 인수까지 확대되면서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현지 투자를 추진 중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도 영향권 안에 있을 수 밖에 없다. 

   
▲ 삼성전자 반도체 클린룸./사진=삼성전자 제공


◆ 칩스법 연장선? 기술정보 요구·경영 개입 우려 

미 정부의 이 같은 언급은 전략적 산업에 정부가 직접 나서 정치, 재정적 개입을 강화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미 정부 입장에선 보조금 재정 지출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공급망 안정과 자국 내 생산 유인을 강화할 수 있는 카드가 된다.

만약 인텔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지분 10%를 미국 정부가 확보하는 사례가 실제 전례로 자리잡는다면, 글로벌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 정부의 간접 투자자 지위를 인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정부가 단순 보조금을 지급하는 역할에서 산업에 대한 직접 투자자로 나서는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공급망 안보와 재정 회수라는 명분이 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기술 정보 요구와 경영 개입 등 예상치 못한 리스크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TSMC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 시장 진출 확대와 동시에 기술 주권과 경영권 독립성 확보에 있어 위험 부담이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과거 반도체및화학법(칩스법) 논의를 하면서 미국은 보조금을 대가로 고객 정보를 요구한 바 있다. 이 당시에는 중국의 개입 여부 등을 판단하기 위한 정도로만 여겨졌다. 실제 협상에서 민간 개인 정보 유출 문제로 이 부분은 빠진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지분 10% 요구는 과거 칩스법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는 업계 내 의견도 있다.

지분 10%를 보유하게 되면 이사회에 들어올 수 있는 만큼, 필요한 정보 열람을 요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민간 고객 정보는 물론 기술 정보까지 유출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또 미국 정부가 이사회 진입 시 경영 개입 가능성이 현실화 될 수 있다는 우려 역시 존재한다.

◆현실 가능성 크지 않지만...자국 기업 위한 협상 카드 부각

업계에서는 실제로 미국 정부에서 해외 기업에 대한 지분 취득이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민간 기업들의 지분을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하듯 요구할 순 없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주식 매입비용도 문제다. 

민간 기업의 경영권 방어도 중요한데 지분을 주식 시장에서 사들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채권 등을 우선 발행한 후 주식으로 바꿔 지분으로 편입하는 방안도 있지만, 이 역시 수많은 주주들을 납득시키는 게 우선이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미 정부의 지분 참여를 현실적으로 쉽게 수용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오히려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인 인텔을 밀어주기 위한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시각이다.

미국 정부의 인텔 지원 논란을 무마하려는 정치적 제스처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자국 기업에만 혜택을 주면 공정성 논란이 일 수 있기 때문에 지분 10%를 요구하고, 이에 응한 기업에 우선 혜택을 주려는 게 참 의도라는 것이다. 결국 10% 지분 확보 카드는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 수혜를 주기 위한 방안이자 반도체 투자 유치 협상에서 협상 레버리지로 활용하기 위한 수단일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인텔만 지원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상쇄하기 위해 다른 기업에 대한 지분 확보도 언급한 것일 수도 있다"며 "실제로 지원금을 받는 해외 기업들이 미국 정부 지분 참여를 수용하기는 쉽지 않다는 현실적 제약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국내 주요 기업에게 미국 시장 진출 확대는 정책 리스크 관리라는 과제를 동시에 떠안는 모양새가 됐다. 업계에서는 기술 주권 확보와 더불어 정책 리스크 관리가 향후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주요한 요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디어펜=김견희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