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초격차 명암…AI 시대 맞아 전략 재정비
기술·조직·체질 재편 나서… 향후 1~2년이 관건
[미디어펜=김견희 기자]삼성전자가 '초격차 전략'을 다시 꺼내 들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호황으로 실적 반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풍요 속에 안주하는 순간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분명히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임원 대상 메시지를 통해 "숫자 반등에 자만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사실상 삼성의 '초격차 전략 2기' 선언으로도 해석된다.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6일 2박 3일간의 중국 출장을 마치고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를 통해 입국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26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의 이번 신년 메시지는 '삼성 초격차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지난 2022년 당시 이 회장은 경영 전면 복귀와 함께 핵심 경영 기조로 초격차 전략을 제시한 바 있다. 이는 메모리·파운드리·시스템반도체 전반에서 경쟁을 허용하지 않는 기술 우위를 회복하겠다는 목표와 함께 대규모 투자와 공격적인 로드맵을 앞세워 반도체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3년이 흐른 지금, 초격차 전략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시장의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난 2022년 외친 초격차 전략이 결과적으로는 경쟁 격차를 벌리지 못했다. SK하이닉스는 AI 시대 핵심 부품으로 부상한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 12단 제품에서 사실상 '큰손'인 엔비디아 공급을 독점하면서 삼성전자를 앞서 나가고 있다. 

이에 삼성전자는 6세대 HBM(HBM4)부터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으로 고군분투해왔다. HBM의 기본 재료인 D램을 경쟁사보다 한 세대 앞선 10나노미터(10억분의 1m) 6세대(1c) 제품으로 하고, 로직 다이도 첨단 공정인 4㎚ 파운드리를 적용했다. 그 결과 최근 HBM4 제품에 대한 엔비디아의 승인이 임박했으며, 곧 양산 체제에 돌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에서도 삼성전자는 시장 점유율이 한 자릿수에 머물며 TSMC와의 더욱 큰 격차가 벌어졌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이 지난해 1분기 7.7%에서 3분기 6.8% 하락한 반면, TSMC는 같은 기간 시장 점유율이 67.6%에서 71% 확대됐다.

그럼에도 삼성전자의 실적은 AI 특수에 힘입어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메모리 업황 회복으로 올해 영업이익이 100조 원대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 회장이 '풍요 속 위기'를 강조한 배경에는 바로 이 같은 실적 개선이 구조적 경쟁력 회복으로 오인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린 셈이다. 메모리 가격의 급등과 HBM 시장이 공급자 우위 구조로 전환하면서 표면적인 숫자는 좋아졌지만, 기술과 조직의 근본적인 체질은 여전히 시험대에 올라있다는 판단이다.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12월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내 첨단 복합 반도체 연구개발(R&D) 센터인 NRD-K 클린룸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사진=삼성전자 제공


◆ '초격차 전략 2기' 시동… 선택과 집중으로 재편

재계에서는 이 회장의 메시지를 계기로 삼성의 초격차 전략이 새로운 판을 짤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과거처럼 전방위 투자 확대보다는 포스트 AI 시대를 대비한 '선택과 집중' 전략이 강화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반도체 부문에서는 HBM의 차세대 공정과 설계 역량을 빠르게 따라잡기 위한 투자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차세대 HBM 공정과 패키징, 설계 역량을 빠르게 따라잡는 동시에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를 아우르는 통합적 기술 전략을 확보할 전망이다. 단순히 생산 능력을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AI 반도체 생태계 내에서 역할을 재정립 하는 것이 관건이다.

파운드리 사업 역시 방향 전환이 예상된다. 시장 점유율 확대 경쟁보다는 수율과 공정 신뢰도를 회복해 고객 신뢰를 되찾는 것이 우선 과제로 거론된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TSMC를 단기간에 추격하기보다는, 특정 공정과 고객군에서 확실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전략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갈 것으로 보고 있다. 압도적으로 시장을 점유하는 것보다 대체 불가능한 기술에 방점을 찍겠다는 것이다. 

DX 부문에서의 전략 방향은 단순 성능이 좋은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AI 사용자 경험을 장악하는 데 있다. TV·냉장고·세탁기·에어컨 등 개별 제품의 스펙 경쟁이 한계에 이른 만큼 AI를 통해 제품 간 연결성과 사용 맥락을 통합하는 전략을 보다 강조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올해도 느린 의사결정과 관료적 조직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내부 쇄신 작업도 이어질 전망이다. 기술 경쟁력만큼이나 의사결정 속도와 실행력이 초격차의 조건이라는 판단 아래, 연구·개발(R&D)과 사업 부문의 권한 재조정과 책임 강화가 뒤따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패를 용인하는 R&D 환경 구축과 임원·중간관리자 책임 강화, 의사결정 단계 축소, 실행 속도 등을 개선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밖에도 로봇과 미래 기술은 삼성의 중장기 성장 축이자, AI·반도체·가전 전략을 연결하는 교차점으로 꼽힌다. 삼성은 휴머노이드 로봇과 산업용 로봇을 단기 성과보다 장기 투자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사람처럼 걷고, 잡고, 판단하는 로봇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점을 전제로 한 전략이다.

삼성의 미래 청사진은 '얼마나 점유하느냐' 보다 '어떤 핵심 기술을 확보하느냐'는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 AI 호황이 이어지는 동안 체질 개선에 실패할 경우 다음 사이클에서는 경쟁력을 급격히 상실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맴돈다. 이처럼 향후 1~2년이 삼성 초격차 전략 2기의 성패를 가를 결정적인 시간이 될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시장의 이목이 쏠린다. 

[미디어펜=김견희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