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 한마디로 충당금의 악몽이다. 은행들은 몇 해 전 불거진 대출사기 사건의 여파로 몸살을 앓고 이번엔 기업 구조조정에 대비한 대손충당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자산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은행들이 고정 이하 여신에 대비해 쌓아둔 대손충당금 적립 잔액은 33조5678억 원이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8년 이후 최대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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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 구조조정에 대비한 대손충당금 문제가 불거져 해당 은행들의 실적 악화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
대손충당금은 은행이 부실채권에 따른 손실을 막기 위해 이익 중 일부를 떼어내 쌓아놓는 '비상금' 성격의 자금을 의미한다. 기업대출 기준으로 정상여신에 대해서는 0.85%, 요주의 7%, 고정 20%, 회수의문 50%, 추정손실 100%의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재무제표 상에서 충당금 적립은 '비용'으로 반영된다.
은행별로 보면 산업은행‧농협은행 등 특수은행 충당금이 16조 6719억 원을 기록했고 국내‧외국계 시중은행은 14조 8586억 원의 충당금을 쌓았다.
대손충당금 총액을 고정이하여신 잔액으로 나눠서 100을 곱한 대손충당금적립률의 경우에도 특수은행들의 사정은 나쁜 편이다. 신한‧국민‧우리‧하나 등 6개 시중은행의 평균 충당금 적립률이 145.3%에 달하는 반면 특수은행의 대손충당금 적립비율 평균은 91.5% 수준이다. 이 중에서 산업은행의 적립률은 78.65%로 가장 낮았고 농협은행이 79.65%로 뒤를 이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기업 구조조정은 일부 은행들의 충당금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산업은행 담당자는 "대우조선해양의 여신이 '정상'으로 분류돼 있어 자산건전성이 하락하게 되면 추가 충당금을 쌓아야 하는 부분이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농협은행의 경우 지난 3월 창명해운에 이어 STX조선해양까지 법정관리 수순으로 가면서 다음 달까지 최대 6500억 원, 올해 전체를 놓고 보면 2조원 안팎의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농협은행의 모회사인 농협금융은 충당금 여파로 올해 1분기 연결기준 순이익이 894억 원에 그쳤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35%나 줄어든 수준이다. 충당금 부담이 커짐에 따라 1분기 실적이 악화된 상황 속에서 올해 남은 기간 더 많은 충당금을 부담해야 하는 형편인 것이다.
김정현 한국기업평가 연구원도 "농협은행의 경우 산은‧수은과 달리 정부의 손실보전 조항이 존재하지 않아 충당금 부담을 고스란히 감내하는 부담이 있다"고 지적했다. 농협 관계자는 "농협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금고금융‧손해금융 등의 분야에서 성과를 내 충당금 부담을 완화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비단 구조조정 뿐 아니라 대출사기 사건이 발생할 경우에도 충당금은 '불청객'이 된다. 2014년 2월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KT ENS 대출사기 사건은 16개나 되는 피해은행을 양산시켰다.
당시 국민은행은 사기대출 피해액 297억 3317만 원을 전액 충당금 처리해 전년도 대비 순이익이 무려 43.07% 감소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가장 큰 피해를 본 하나은행의 경우 피해액 1624억 원 가운데 861억 원을 충당금으로 설정한바 있다.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고 은행들의 주 수입원인 예대마진 수익모델의 힘이 약해진 상황에서 '충당금 리스크'는 당분간 은행들의 실적과 업계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변수가 될 확률이 높다는 지적이다.
물론 특수은행에 비해 대손금 적립비율이 높은 각 일반은행 담당자들은 최근의 구조조정 흐름에도 불구하고 충당금 부담이 결정적인 수준은 아니라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는 '표정관리'를 하고 있지만 상황이 악화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의 몫으로 돌아간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감독원 은행감독국 김용태 팀장은 "대손충당금 부담은 은행들의 수익성 회복 움직임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면서 "예대마진 확대‧수수료 인상‧지점 폐쇄 등 간접적으로나마 금융소비자들의 부담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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