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객 줄었지만 대면시간 급증, 행원 피로누적
"금소법이 뭡니까?"…문자받은 노인층 은행줄 서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원래 체크카드 신규발급은 5분만에 한다는 말이 나올정도로 금방 처리하는 업무예요. 카드 발급도 금소법에 적용되는지 잘 모르겠네요.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지난 25일 시행되면서 은행 일선에서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기자는 26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 은행 지점을 찾았다. 때마침 사용 중이던 카드를 분실해 은행을 방문할 계획이었다. 이 지점은 은행들이 디지털금융의 일환으로 도입 중인 '스마트 키오스크'를 배치한 곳이었다. 

   
▲ 시중은행 점포 내 창구 /사진=미디어펜


기존 ATM기기의 뒤를 이을 스마트 키오스크는 금융 소비자가 행원들을 대면하지 않고도 주요 업무를 처리할 수 있어 주목받고 있다. 통장·카드의 신규 및 재발급 업무부터 공과금 납부, 적금상품 가입까지 가능하다. 번호표를 뽑고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대면업무와 달리 소비자가 쉽고 빠르게 업무를 처리할 수 있어 효율적이다. 

기자도 이 기기를 통해 카드를 재발급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금소법이 시행되면서 은행들이 키오스크 주요 업무를 대거 일시 중단시킨 까닭이다. 지점 안으로 들어갔다. 번호표를 받고 기다렸다. 내부는 코로나 여파로 과거보다 한산한 모습이었다. 다만 비대면업무에 익숙치 않은 노인층이 간간이 눈에 띠었다. 

특히 은행들이 주요 고객에게 보낸 금소법 관련 문자메시지를 받고 지점으로 몰려드는 노인층이 많았다. 관계자들은 내용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빼는 모습이었다. 노인층이 대체로 금소법의 존재를 몰라 확인차 방문한 것이다. 

한 행원은 "어제오늘 문자를 받고 오신 어르신들이 상당하다. "금소법이 무엇이냐"고 묻는 경우가 많다"며 "형식적으로 안내문자를 보내는 거라고 말씀드린다. (응대가) 힘든 건 아니지만 빈도가 잦아 업무 피로도가 쌓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스마트 키오스크 모습. 키오스크를 통한 주요 업무를 대거 막아놓은 상태다. /사진=미디어펜


어느새 기자의 차례가 다가왔고, 체크카드 신규발급을 요구했다. 기자가 금소법을 언급하니 행원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코로나로 비대면업무가 많아지면서 방문객은 줄고 있지만 기존 업무에 금소법까지 겹쳐 일이 더 과중해졌다는 평가다. 

특히 소비자가 예·적금 및 연금·펀드 등 투자상품을 새롭게 개설할 때 행원에게 설명을 제대로 들었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이를 위해 행원들은 설명의무를 읊고 이를 녹음기로 녹취하고 있다. 행원의 설명이 끝나면 고객도 녹음기에 "상품 특성을 이해했다"고 밝혀야 한다. 

녹취과정은 양자 간 책임소지를 명확하게 할 수 있는 절차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로 내다봤다. 녹취로 소비자도 책임을 진다는 걸 증거로 남기지만, 형식적인 절차라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또 금소법이 소비자 보호에 초점을 두다 보니 소비자 입김에 더 반응할 거 같다는 의견도 나온다. 고객이 상품을 가입할 때 약관내용을 안내받고 동의했더라도 손실이 발생하면 소비자가 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점 관계자는 "기존 내부 매뉴얼도 벅찬데 갑자기 금소법까지 적용되면서 숙지도 못한 내용을 고객에게 설명하느라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다"며 "어제도 고객에게 상품 가입절차를 설명하다가 (컴퓨터에서) 약관을 넘길 때마다 경고창이 떠 너무 많은 시간을 지체했다. 일부 행원은 금소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다 보니 고객에게 사과드리고 돌려보내기도 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금소법이 금융사에게 불완전판매 입증 책임을 부여하면서 은행뿐만 아니라 담당 행원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다보니 단순 업무조차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이날 기자의 체크카드 발급도 예상보다 지체된 30여분이 소요됐다. 해당 업무가 금소법에 적용될까 우려한 탓이다. 담당 관계자는 "카드 발급업무가 금소법에 적용되는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가이드대로 확인 후 조심스럽게 업무를 하다보니 5분만에 할 일이 오래 걸린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최근 라임·옵티머스 등 펀드 불완전판매 사건 등으로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은 걸 고려해 금소법의 취지에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다만 제도가 꼼꼼한 준비과정과 유예기간을 거치지 않고 급작스레 현장에 적용돼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일각에서는 디지털 키오스크가 은행의 단순업무를 대거 대체한 후 행원과 기기가 업무적 조화를 이뤘을 때 금소법이 시행됐어야 한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관계자는 "단순 업무는 향후 스마트 키오스크 같은 기기가 대체해야 한다. (스마트기기를 이용한) 비대면업무가 30%에 달할 정도로 기기가 보편화된 후 이 법이 시행됐다면 소비자와 행원 간 혼란을 덜었을 것 같다"며 "디지털화가 시작되는 과도기에 금소법이 나오니 당분간 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