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이라는 새로운 환경은 무차별적이다. 그들만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범죄는 왜곡된 성에 대한 죄의식조차 없다. 이는 사이버상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픈 현실이다.
단지 성적 모럴헤저드가 아니라 사회 깊은 곳에서 오랫동안 암적인 존재로 자라온 고질적 병폐이기도 하다. 잘못된 성 관념이 악의 세습으로 이어지면서 사회 통합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혹마저 들게 한다.
이에 본보는 디지털 성범죄의 현황과 구조적 문제 진단, 범죄 엄단과 예방을 위한 양형기준 강화, 성인지 지수 향상, 해외 사례 등을 중심으로 '내 손안에 악마가 산다 - 제2의 n번방 막아라'를 주제로 심층 기획시리즈를 연재한다.
시리즈 순서 ①n번방 사태로 본 디지털 성범죄 현주소/②악마는 디테일에 있다?…2차 피해는/③'솜방망이' 처벌이 부른 악순환/④피해자 위한 사회 안전망은?/⑤[르포]아이들 향해 랜선 타고 엄습하는 '검은 손'…영국 법은/⑥[르포]미국에서 n번방 사건 일어났다면?/⑦[르포]여성인권 선진국 스웨덴…강력한 법이 답/⑧'제 2의 n번방 막아라' 전문가들 목소리는[편집자 주]
[제2 n번방 막아라-②]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2차 피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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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우리 사회의 무관심으로 N개의 방이 생겼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계속 방관하시겠습니까?"라는 문구가 쓰여진 공익광고 모습이다. '우리의 작은 행동이 모여 디지털 성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가 만들어진다'는 취지로 서울 시내 지하철역에 게시되어 있다./사진=미디어펜 |
[미디어펜=특별취재팀 김규태 기자] 지난해 가장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일명 'n번방' 사건, 디지털 성착취물을 공유하는 텔레그램 대화방과 관련해 경찰은 지난 2019년 9월 대대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수사 결과, 사건 피해자는 총 74명이고 이 중 16명이 미성년자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 사건에서 불거진 가장 큰 문제는 물리적 공간에 제한되지 않는 인터넷 커뮤니티 확산성인 일명 '펌 문화'로 인해 출처 불명의 디지털 성착취물이 온갖 유포방식을 통해 변형됐다는 점이다. 실제 2차, 3차 유포로 불거진 피해는 심각하고 반(半)영구적이며 확장성이 컸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듯이 디지털 성범죄가 최초로 일어나는 순간은 복잡하면서도 단순하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취약함을 이용해 관계를 형성하고 비밀유지와 고립, 성적 착취를 통해 통제를 유지한다.
특히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이미지 영상물 유포 협박을 통해 통제를 지속한다. 지난해 확인된 유사 사례 중에서는 이러한 그루밍(grooming) 수법으로 피해자가 재판 중에 자살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여기에 2차 피해를 더하는 것은 인터넷 연결망 확대로 인한 피해 확산의 가속화다. 2016년 4월 전남 여수의 한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운행정보시스템 모니터를 통해 성관계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상영되는 일이 발생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2차 피해' 양산 구조는
이에 대해 국내 주요 포털 관계자는 지난달 26일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서 "인터넷에 한번이라도 유포된 성착취물은 영구적인 완벽한 삭제가 어렵다"며 "포털이 관리할 수 있는 것은 웹 상에 사용자가 직접 올리거나 공유한 파일에 국한된다. 스마트폰을 통해 개인이 동영상과 사진을 합성 가공하는 등 2차 가해가 벌어지는 것 자체를 잡을 수 없는 게 물리적 한계"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최근 관련 범죄 추세와 포털에 올라왔다가 삭제한 파일 내역을 살펴보면 각종 채팅어플이나 온라인메신저,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 등 SNS가 주요출처인데 정확히 어디까지 합성 가공했는지 파악하기 힘든게 대다수"라며 "더 큰 문제는 올라온 문제의 영상 중 피해자 식별이 가능한 것이 80~90%에 달한다. 확산에 의한 2차 피해가 극대화되는 양상"이라고 밝혔다.
그는 다크웹에 대해서도 디지털 성범죄의 2차 피해가 벌어지는 주 공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중이 즐겨 쓰는 구글·빙·유튜브·페이스북·네이버 등 목록형식으로 저장(인덱싱)되어 개방된 것이 일반적인 Surface Web(웹)이고 의료기록·법정자료·논문데이터베이스·과학기록·정부문건 등 해당 주소를 정확히 알고 주소창에 입력해야 알 수 있는(인덱싱되어 있지 않은) 정보를 Deep Web(딥웹)이라고 말한다"며 "다크웹은 이 딥웹 중에서도 암호화된 네트워크에 존재하며 일종의 다중 프록시를 통해 IP주소가 은닉되어 있고 사이트 전체가 암호화되어 있는 콘텐츠"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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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운영하는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 모습. 센터에서는 지속적인 상담과 피해촬영물 삭제를 지원하고 있다./사진=피해자지원센터 홈페이지 |
이어 그는 "다크웹과 딥웹을 합치면 실제 사이버공간에 자리한 정보의 90%라는게 학계의 정설"이라며 "다크웹을 이용할 수 있는 대표적 브라우저가 토르-Tor·The Onion Router"라고 덧붙였다.
그는 "문제는 공권력이 잡기 힘든 분산형 불법 다크웹 사이트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라며 "운영자 한 사람을 경찰 당국이 체포해도 디지털 성범죄 2차 피해를 막기 힘들다는 것이다. 다크웹 운영방식이 점조직화되어가고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이러한 다크웹을 통해 일반 성관계나 성착취물을 넘어 아동음란물, 고문살해 관련 스너프 영상물, 청부살인 의뢰까지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다.
지난 2015년 IT보안기업 트랜드마이크로사의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는 세계 3위의 다크웹 사이트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또한 실제 추적이 어렵다는 점에서 추정에 불과하다.
국내 실정은 만만치 않다. 취재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해 우리나라 다크웹 접속을 1만여 건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18년 5월 충남 지역에서 다크웹을 통해 아동음란물 22만 건을 유통해 이용자 120만 명으로부터 4억 원을 벌어들인 업자가 입건된 점을 고려하면, 그 규모를 쉽사리 추산하기 어렵다.
2~3차 피해, 어떻게 막나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해 또다른 2차 피해 양상은 법정에서 벌어진다. 지난해 한 연예인 불법촬영-협박 혐의 사건에 대한 재판 중 재판부의 촬영물 재생 요구가 언론을 통해 공론화된 바 있다.
피해자들 대다수가 재판 과정에서 촬영물 반복 재생으로 인한 2차 피해 가능성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법조계에서는 이에 대해 재판과정에서 촬영물이 아닌 보고서 및 평가서를 기반으로 형사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소송절차를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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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성착취 동영상 제작 및 유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 모습이다. 디지털 성범죄 2~3차 가해자의 단적인 사례다./사진=연합뉴스 |
크게는 공권력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디지털 성범죄로 인한 성착취물 유통의 기반을 와해하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지만, 작게는 유통망을 통해 이득을 얻는 가해자에게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가해자에게 실손해 이상의 배상금을 부과해 성착취물을 유통할 유인을 억제하고 범죄 동기를 최소화해야 한다.
2차, 3차 가해는 피해자에게 너무나 가혹한 형벌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최대한 막아야 한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충분한 배상을 하게 함으로써 사회 공동체 전체의 제재력을 증가시키는 것만이 답이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