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 코스닥과 코스피 시장을 각각 대표하는 에코프로‧포스코 계열사들의 주가 급등락은 올해 국내 증시 최고의 화두가 됐다. 올해 초 10만6000원으로 거래를 시작한 에코프로 주가는 지난 26일 기어이 장중 150만원선을 뚫고 내려왔다.
포스코 그룹주들은 에코프로에 비해 늦게 불이 붙었으나 연초 대비 2~3배 넘는 상승세를 나타내긴 마찬가지다. 시가총액이 많게는 수십조 원에 달하는 기업들의 주식이 이렇게 가볍게 움직이는 현상은 결코 흔하지도 정상적이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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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2차전지 테마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심리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FOMO, 두 번째는 통쾌함이다. /사진=김상문 기자 |
이들 2차전지 테마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심리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FOMO 증후군(Fear Of Missing Out), 즉 급등세에 동참하지 못했다는 소외감이다. 사실 에코프로의 주가는 올해 내내 올랐고 계속 증권가의 핫이슈였다. 주식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번쯤 관심을 가질만한 요소는 늘 존재했다.
그러다 주가가 처음으로 80만원선에 도달한 지난 4월 무렵 국내 증권사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매도 리포트’가 나오는 등 투심을 흔드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오를 만큼 올랐다’는 심리가 팽배한 가운데 주가는 한동안 횡보했다. 일찍 투자에 나선 많은 투자자들이 매도했을 가능성이 높은 지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잠시 횡보하던 주가는 이달 들어 다시 한 번 거침없이 날아올랐다.
투자자 괴롭히는 ‘FOMO 증후군’
대다수의 투자자 심리 특성상 상승 초반에 에코프로를 보유했더라도 중간 어느 시점(80만원~100만원 구간)에서 매도했을 확률은 매우 높아 보인다. 다시 말해 이 FOMO 증후군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투자자는 극히 드물 것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이 FOMO 심리가 에코프로 후발주자로 낙점된 포스코 그룹주들의 주가상승을 촉발시킨 도화선이 된 측면이 있다.
투자자들이 느끼는 두 번째 심리는 통쾌함이다. 정확히는 공매도 세력에 대한 ‘응징’의 쾌감이다. 특히 에코프로 계열사들의 경우 올해 내내 공매도 세력과 혈투를 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거침없는 주가 상승세는 결국 공매도 세력들이 포지션을 청산하고 숏 스퀴즈(공매도에 나섰던 투자자가 주가상승에 의한 손실을 커버하기 위해 해당 주식을 매수하는 것)에 나서도록 만들었다.
실제로 에코프로 주가가 100만원을 넘긴 이후부터는 숏 스퀴즈에 의한 상승세가 주가에 탄력을 준 것으로 파악된다. 언제나 개인투자자들을 울려온 ‘세력’들이 공매도했던 주식을 자기 손으로 매수하도록 하는 그림은 많은 투자자들에게 정의가 구현된 듯한 인상을 줬다.
올해 국내증시 이슈의 정점이자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배터리 아저씨’ 박순혁 작가(전 금양 홍보이사)가 조선시대 민란의 주도자인 임꺽정이나 전봉준에 비유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박 작가는 2차전지 산업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을 꿋꿋하게 내놓으며 화제의 중심을 자처해왔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가 내뱉는 말들이 ‘자기실현적 예언’이 된 면도 있다. 박 작가는 최근까지도 에코프로 주가의 상승을 전망하다 지난 26일 처음으로 신중한 입장을 표명하며 뒤늦게 에코프로를 매수한 투자자들의 심리를 다시 한 번 요동치게 만들고 있다.
美 ‘게임스톱 사태’ 연상시키는 에코프로
이쯤에서 연상되는 미국의 유사 사례가 있다. 2021년 게임스톱 사태다. 미국의 개인 투자자들이 2021년 1월 헤지펀드의 공매도 투자를 비난하며 오프라인 비디오게임 유통업체 게임스톱의 주식 매수를 대대적으로 결의한 사건이다. 투자자들은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으로 소통하고 온라인 증권사 로빈후드 앱을 이용해 거래에 나섰다. ‘밈(meme) 주식’이라는 말도 이 사건을 계기로 생겨났다.
사태는 엉뚱하게도 로빈후드 측이 게임스톱 주식의 매수 버튼을 비활성화 시키면서 ‘역대급 사건’으로 비화됐다. 이후 로빈후드에 대한 비난이 빗발치면서 관심 없던 개인투자자들까지 총집결했고, 공매도 헤지펀드 세력은 물론 월스트리트 전체와 대립각을 세우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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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스톱과 에코프로를 일직선상으로 비교하기엔 여러 측면에서 무리가 있다. 그러나 사태를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심리만큼은 어느새 비슷해져 있는지 모른다. /사진=김상문 기자 |
이 사건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로 제작(‘월스트리트에 한 방을: 게임스톱 사가’)되는 등 역사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게임스톱 공매도 초기세력 중 하나인 멜빈 캐피털은 결국 이 사태 여파로 2022년 5월 파산했다.
게임스톱과 에코프로를 일직선상으로 비교하기엔 여러 측면에서 무리가 있다. 그러나 사태를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심리만큼은 어느새 비슷해져 있는지 모른다. 언제나 부족한 정보와 모자란 자본으로 불확실성을 버텨내야 하는 개인투자자들이 공매도 세력과 결전을 벌여 끝내 승리한 기록이 결국 한국에서도 남겨진 셈이기에 그렇다.
문제는 모든 개미들이 웃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주가가 오를 땐 모두가 행복하지만 하락이 시작되면 누군가는 손실을 감내해야 한다. 그리고 에코프로 주가는 언제 폭락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치솟아 있다. 시장은 이미 대체재를 찾기 위한 물색작업에 들어갔고, 어쩌면 포스코 그룹주가 이미 그 대안으로 낙점된 상태인지 모른다.
다음은 정말 ‘포스코’일까
과거 포항제철이라는 이름의 국민주식은 현재 POSCO홀딩스라는 이름의 지주사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상승세로 시가총액이 50조원 수준으로 치솟으며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코스피 시가총액 4위 자리를 다투고 있다. 포스코그룹이 에코프로의 후발주자가 되기 위해선 당연히 2차전지라는 필수요소가 있어야 했지만, 무엇보다 포스코라는 이름이 주는 안정성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 증시의 경우 아무리 신뢰받는 대기업의 주식이라 해도 ‘물적분할 상장’ 문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아울러 각 기업의 지주사들은 재벌들의 승계나 상속 문제에 엮이는 경우가 많아 그 점이 주가 불확실성으로 작용하곤 한다. 에코프로조차도 에코프로머티리얼즈 등 자회사 상장 이슈, 내부자 거래 논란 등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회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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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CO홀딩스는 대기업 지주사임에도 다른 회사들이 안고 있는 리스크를 피해가고 있다. 사진은 포스코센터빌딩. /사진=POSCO |
흥미롭게도 POSCO홀딩스는 대기업 지주사임에도 이 모든 문제를 피해가고 있다. 우선 물적분할 상장 문제는 회사 측에서 먼저 ‘물적분할 후 자회사를 상장할 경우 주주총회 특별결의에 의한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정관을 추가한 상태다.
일각에선 정관을 변경할 가능성을 예상하지만, 최대주주 국민연금이 이 부분에 매우 엄격한 입장이다. POSCO홀딩스의 최대주주가 재벌 개인이 아닌 국민연금이라는 점도 아이러니하게 POSCO홀딩스의 신뢰성을 높이는 요소가 되고 있다.
여러 요소들이 맞물려 ‘에코프로 다음은 포스코’라는 견해가 탄력을 얻는 모습이다. 비단 POSCO홀딩스 뿐이 아니라 앞에 ‘포스코’를 달고 있는 모든 계열사들의 주가가 각광을 받고 있다. 국내 증권사 한 관계자 A씨는 “에코프로 주가가 겨울에 도달했다면 포스코 그룹주들은 이제 봄”이라고 조심스레 비유하기도 했다.
2차전지 쏠림, 이대로 괜찮은가
지난 26일 국내증시는 참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기이한 움직임을 나타냈다. 에코프로 주가는 오후 1시7분 153만9000원까지 올랐지만 1시56분엔 113만6000원까지 떨어졌다. 50분 만에 약 30%의 낙폭이 생긴 것이다.
누군가 고점에서 단 1주를 매수했다 해도 1시간 만에 40만원 정도의 손해를 봤을 가능성이 있는 극심한 변동성이다. 같은 시간 코스닥 지수는 지수 전체가 무려 약 7% 폭락(고점 대비)하는 ‘아비규환’이 연출됐다.
개별 종목의 흐름이 극단적으로 등락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이번 장세의 진정한 특이성은 2차전지 테마를 제외한 모든 종목들의 수급이 메말라버렸다는 데 있다. 즉, 2차전지 테마가 다른 종목들의 수급을 극단적으로 빨아 당기고 있다는 점이 이번 장세의 진짜 특징이다.
2차전지주들이 하락세로 방향을 돌리기 전부터 非2차전지 종목들은 이미 코로나19 팬데믹 당시를 방불케 할 정도의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지난 26일 코스피 시장에서 상승한 종목은 89개에 불과했고 하락종목은 875개나 됐다. 코스닥은 상승 89개에 하락 1496개라는 처참한 성과로 시장이 닫혔다.
국내 증권사 관계자 B씨는 “2차전지주가 아니면 어떤 주식도 오르지 않고 있고, 2차전지 테마를 제외한 별도의 지수가 필요해 보일 정도”라면서 “코스닥 지수가 900선에 와있지만 2차전지를 빼고 보면 700 정도가 아닌가 싶다”고 토로했다.
2차전지가 시장의 모든 자금을 다 빨아들이는 최근의 형국은 결과적으로 대다수의 개인 투자자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결과로 이어질지 모른다. 실제로 미수 반대매매 경고등이 이미 하나 둘 켜지고 있다. 뜨거운 민란의 열광 뒤에는 냉혹한 영수증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전체 지수는 순항 중인 '풍요 속의 빈곤' 상황이 계속 이어지는 중이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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