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견희 기자]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현지 반도체 공장에 부여했던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지위를 철회한 가운데, 국내 반도체 업계의 불확실성이 거론되고 있다. 일관성 없는 정책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면서도 중장기적으로 기업에 유의미한 영향은 없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1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국 법인의 VEU 지위를 철회하는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VEU는 미국 정부가 신뢰성을 인정한 해외 기업에 부여하는 일종의 수출 허가 예외 조치로, 해당 기업은 반도체 장비 등을 들여올 때 건별 허가 절차 없이 포괄적으로 반입이 가능했다.
이번 VEU 철회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앞으로 중국 공장에 미국산 첨단 장비를 반입할 때마다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한다. 특히 BIS는 이번 철회 규제 발표에서 기존 공장의 운영용 장비 반입은 허가하되, 증설 또는 기술 업그레이드를 위한 장비 반입은 승인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현재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공장에서 전체 낸드플래시 생산의 30~40%, SK하이닉스는 우시에서 D램의 약 40%를 생산 중이다. 인텔에서 인수한 다롄 공장에서는 낸드플래시를 생산하고 있다.
이를 두고 시장 일각에선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장기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또 중국의 기술 발전을 부추기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두 회사 모두 첨단 기술력을 포함한 공장을 둔 생산 국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속단하기 이르다는게 업계 전문가의 분석이다.
업계 전문가는 "국내 기업들이 중국 내에서 첨단 제품을 생산하고 있지 않다"며 "VEU 철회로 기술 업그레이드 장비 반입 승인이 안된다고 하더라도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행정적 업무나 절차가 늘어날 뿐, 생산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기존 세대 제품의 대량 생산기지 역할일 뿐이다. 실제로 삼성전자 시안 공장은 대량 생산 거점이긴 하지만 연구개발(R&D)과 최첨단 노드(차세대 공정)는 한국을 중심으로 체제가 구축돼있다. SK하이닉스 우시 공장도 마찬가지다. 전체 낸드의 생산량 중, 중국산 비중은 크지만 주로 구세대 범용 D램 제품들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미국이 한국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분석하는 시각도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은 "아직 관세나 보조금 협상이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미국의 VEU 철회는, 미국이 한국에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제스처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미 행정부가 예고한 반도체 품목 관세에 대한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는 점도 리스크로 꼽힌다. 다만 트럼프는 미국 내 투자 기업에겐 해당하는 품목 관세를 면제할 것이라고 언급했지만, 최종 합의에 이르기 이전 변동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지난 25일 한미정상회담 이후 개최된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도 국내 기업에 대한 신규 투자 소식은 없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번 조치와 관련해 별도의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다만 유예기간이 주어진 만큼 당분간은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한다는 입장이다.
[미디어펜=김견희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