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하고 지속적인 '삭제'가 최대 관건
피해자 지원서비스 보완점은?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환경은 무차별적이다. 그들만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범죄는 왜곡된 성에 대한 죄의식조차 없다. 이는 사이버상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픈 현실이다.

단지 성적 모럴헤저드가 아니라 사회 깊은 곳에서 오랫동안 암적인 존재로 자라온 고질적 병폐이기도 하다. 잘못된 성 관념이 악의 세습으로 이어지면서 사회 통합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혹마저 들게 한다. 

이에 본보는 디지털 성범죄의 현황과 구조적 문제 진단,  범죄 엄단과 예방을 위한 양형기준 강화, 성인지 지수 향상, 해외 사례 등을 중심으로 '내 손안에 악마가 산다 - 제2의 n번방 막아라'를 주제로 심층 기획시리즈를 연재한다. 

시리즈 순서 ①n번방 사태로 본 디지털 성범죄 현주소/②악마는 디테일에 있다?…2차 피해는/③'솜방망이' 처벌이 부른 악순환/④피해자 위한 사회 안전망은?/⑤[르포]아이들 향해 랜선 타고 엄습하는 '검은 손'…영국 법은/⑥[르포]미국에서 n번방 사건 일어났다면?/⑦[르포]여성인권 선진국 스웨덴…강력한 법이 답/⑧'제 2의 n번방 막아라' 전문가들 목소리는[편집자 주]

[제2 n번방 막아라-④] 피해자 위한 사회 안전망은?

   
▲ 디지털 성범죄는 현실공간의 물리적 접촉 없이도 피해자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어 신체적·정신적으로 피해를 가하게 된다. 한번 유포되면 사이버공간에서 완전히 삭제·근절하기 어렵다. /사진=미디어펜DB
[미디어펜=특별취재팀 김규태 기자] 디지털 성범죄의 현 주소와 2차 피해 양상, 솜방망이 처벌 강화 방법에 대해 앞서 살펴보았지만, 문제의 핵심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다. 복구불가능한 피해 상황을 어떻게 최대한 되돌리고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지 관건이다.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피해자 영상·사진 등 촬영물의 신속하고 지속적인 '삭제' 일체다. 우리나라에서는 전기통신사업자의 유통방지 책무가 구체적으로 규정되었지만 갈 길은 멀다.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해 온라인서비스 제공자의 의무규정이 최초로 마련된 것은 지난 2017년 5월이다. 이후 2018년 2월 촬영물 삭제지원이 법·제도적 대책으로 도입됐다.

신속하고 지속적인 '삭제', 지원하려면

삭제지원 담당 기관은 여성가족부 산하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디성센터)다. 현재 디성센터가 문제의 촬영물을 모니터링하거나 제 3자 등이 발견했을 경우, 디성센터는 보호자나 가족의 신고나 요청 하에 삭제하도록 되어 있다.

디성센터의 촬영물 삭제 지침은 다음과 같다.

▲인터넷 온라인에 유포된 피해자 촬영물만 삭제 가능하며 라인 카카오톡 등 메신저로 유포된 촬영물은 삭제 불가, ▲피해 당사자의 촬영물만 삭제 가능, ▲디성센터는 피해자 위임을 받아 대리로 삭제하므로 삭제지원을 요청하는 피해자(미성년자 포함)는 삭제신청서류 및 신분증 사본을 제출, ▲미성년자는 삭제지원 신청 시 보호자의 동의서가 필요하다.

삭제 지원 순서는 아래와 같다. 웹하드·검색엔진·P2P 성인사이트·SNS 등 플랫폼에 따라 삭제 요청 방법이 다르다.

   
▲ [표]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삭제 지원 순서./사진=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지난 9월초 '디지털 아동청소년 성착취 근절 제도개선 현황 및 과제' 분석보고서를 쓴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 전윤정 입법조사관은 이와 관련해 "보호자 가족의 신고나 요청 없이도 기관이 삭제하는 방안 등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며 "삭제 후에도 지속적인 모니터링 등 매뉴얼을 작성하고 실질적인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 조사관은 이어 "삭제시스템의 고도화도 필요하다"며 "포털사업자의 자율규제와 협력이 필수적인 만큼 정보공유를 통해 삭제 조치를 적극 활성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인지방법별 심의 현황' 자료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처벌이나 상담보다 촬영물 삭제를 우선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를 위한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상담이 필요하지 않은 방심위 홈페이지 접수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즉각적이고 신속한 삭제만이 피해자가 가장 바라는 길이다.

삭제 지원과 관련해 외국계기업 IT보안팀장인 한상기(39) 씨는 본지 취재에 "해외 스트리밍사이트의 경우 보안 조치가 완비되어 있어 국내 망사업자를 통한 접속 차단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며 "불법 스트리밍사이트에 대한 접속 차단 조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 팀장은 이어 "정보를 기록한 해시값(hash을 이용해 온라인 상에 유포된 촬영물을 신속히 탐지하는 기술 방안도 필요하다"며 "피해자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속한 삭제다. 일원화되어 관계기관 간 긴밀한 협력이 가능한 공조시스템을 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삭제 지원의 최일선에 선 것은 디성센터다. 센터는 피해자가 전화, 비공개 온라인게시판, 방문접수를 통해 피해사실을 신고하면 유형 및 그 정도를 파악해 관련 지원을 연계하도록 운영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12월 30일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11개월간 센터는 총 1936명의 피해자에게 9만 6052건을 지원했다. 전년도 2018년에 비해 월 평균 삭제지원 건수가 2배 이상 늘었고, 법률지원 건수도 1.5배 이상 증가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엿보인다.

   
▲ 사진은 "우리 사회의 무관심으로 N개의 방이 생겼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계속 방관하시겠습니까?"라는 문구가 쓰여진 공익광고 모습이다. '우리의 작은 행동이 모여 디지털 성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가 만들어진다'는 취지로 서울 시내 지하철역에 게시되어 있다. /사진=미디어펜
피해자 지원서비스 이모저모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지원서비스는 여러 갈래로 나뉜다. 먼저 상담지원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피해자에게는 ▲정기적 심리상담 ▲각종 심리검사 실시 ▲상담 전문가와 연계 등 심리상담이 이루어진다. 상담지원 사업기관은 성폭력상담소, 보호시설, 해바라기센터(각 지방경찰청 산하), 여성긴급전화 1366이다.

둘째로 의료지원이다. 담당 기관은 전담의료기관, 해바라기센터, 성폭력상담소이고 심리적·정신적 치료보호에 소요된 비용 전액을 지원한다. 단 지원기간은 2년을 원칙으로 하되, 그 기간이 2년을 초과하는 경우 담당 기관과 해당 지자체가 협의를 통해 계속적인 지원 여부를 결정한다.

셋째 법률지원이다. 디지털 성범죄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당장 발등의 불을 꺼야할 사안으로, 자기 보호 능력이 부족한 여성·아동·청소년의 기본적 인권을 위해 법률지원에 나서고 있다.

법률상담 및 소송대리를 필요로 하는 피해자 본인 또는 법정대리인은 대한법률구조공단(전국 18개 지부 및 40개 출장소)·대한변협법률구조재단·한국성폭력위기센터에 요청할 수 있다.

보완해야 할 점은?

다행인 것은 직접적인 성폭력방지법의 적용을 받지 않더라도 사이버음란물 유포죄 등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 지원이 가능하도록 운영지침을 확대했다는 점이다. 다만 법조계에 따르면 형법상 협박죄 피해를 당한 피해자의 지원여부를 명시하지 않아 적용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보완해야 할 점이다.

지역별 해바라기센터 및 여성긴급전화 1366 등은 본지 취재에 실질적인 원스톱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절실하게 밝혔다. 전문성에 따라 원스톱 지원을 받지 못해 여러 기관을 거치면서 피해 사실을 수차례 반복하거나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도 더러 있다는 지적이다.

가장 시급한 삭제 지원의 경우, 디성센터가 최초 연결 기관이어야 삭제 지원이 가능한 선에서 신속히 이뤄진다. 여성긴급전화 1366이 최초 연결 기관이 되면 수사 여부에 따라 수사기관이나 디성센터로 연계되는 구조다. 해바라기센터도 마찬가지다. 경찰 사이버수사대 등 수사기관이 최초 연결 기관이 되면 수사가 진행되거나 종료된 후, 해바라기센터로 연계되는 방식이다.

보다 빠른 추적 및 삭제를 위해 개인정보 동의에 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경찰 사이버수사대와 여성가족부 관계자로부터다. 피해자가 자신이 나온 영상물을 신고할 경우, 개인정보동의서가 경찰·여가부·방송통신심의위원회 모두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현재 영상등록은 최초 등록담당자와 경찰청 담당자만이 볼 수 있어 유출 문제에서 안전하다고 하지만, 피해자들은 타인이 자신의 영상을 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2차 피해를 두려워하고 유출될까 무서워 영상등록을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유출에 관한 처벌규정을 두고 엄격히 관리해 피해자의 불안을 해소시키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디지털 성범죄는 현실공간의 물리적 접촉 없이도 피해자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어 신체적·정신적으로 피해를 가하게 된다. 한번 유포되면 사이버공간에서 완전히 삭제·근절하기 어렵다.

일반 성폭력과는 다른 특수성을 지니고 있어 그에 맞는 대처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피해자가 도움을 호소할 경우 체계적인 지원을 받는 동시에, 법률 및 삭제 지원을 중심으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원스톱서비스로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작은 행동이 모여 디지털 성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가 만들어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운영하는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 모습. 센터에서는 지속적인 상담과 피해촬영물 삭제를 지원하고 있다./사진=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