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차례 재무 실사 거치며 미리 거취 결정했을 가능성 높아
업계 "현직 여당 의원 일가와 거래…정치적 부담감 탓 입장 발표 꺼렸을 것"
본지 단독 보도 등 잇따른 언론 보도에 M&A 결렬 공식화 나서
   
▲ 제 갈 길 가는 이스타항공과 제주항공 여객기./사진=연합뉴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이스타항공 재무 실사를 여러 차례 진행했던 제주항공이 인수 포기론을 현 시점에 공식화한 배경에 대해 이목이 집중된다.

5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제주항공은 지난 2일 이스타항공 측에 타이이스타젯 지급보증·임금 체불·항공기 리스료 해결 등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내 "10영업일 이내로 1000억원 상당의 채무 문제를 해소해오라"고 통첩했다.

제주항공이 인수 포기를 직접 거론하지는 않고 에둘러 표현한 것이나 완전 자본 잠식상태인 이스타항공은 이 요구사항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 제주항공이 사실상 인수·합병 결렬을 선언한 것이다.

제주항공-이스타항공 간 인수·합병 논의는 지난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항공업계에서는 이스타항공이 경영난으로 매물로 나온다는 소문이 무성했고, 제주항공이 관심을 보인다는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실제 제주항공은 지난해 12월 18일 이스타항공 최대주주 이스타홀딩스와 주식매매계약(SPA)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경영난 극복 차원에서 100억원을 빌려줬다.

김태윤 제주항공 CFO(상무)는 이스타협력단장직에 임명돼 이스타항공에 파견됐고, 수차례 실사를 거치며 재무상태를 수시로 확인해왔다. 하지만 실사 기간이 자꾸 뒤로 밀리며 이스타항공 재무상태가 예상 외로 심각한 것 아니냐는 분석과 SPA 자체가 어그러질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고, 이는 곧 사실로 드러났다.

이와 같은 과정에 따르면 제주항공 측은 이스타항공의 재무상태가 어떤 수준인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는 얘기가 되며, 내부적으로 인수 포기의 뜻을 한참 전부터 굳혔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제주항공은 왜 이렇게 시간을 끌어오며 함구한 것일까.

우선 제주항공 자체적 문제가 꼽힌다. 전혀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리스크 탓에 항공업계가 어려움을 호소하는 가운데 제주항공도 이 여파를 피해갈 수 없었다. 이 회사는 올해 1분기 당기순손실 1014억원을 기록했고, 이에 따라 이스타항공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주항공 측 입장 표명에 다소 시일이 소요된 데에는 위와 같은 경제 논리가 아닌 정치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힘을 얻고 있다.

   
▲ 이스타항공 창업주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사진=연합뉴스


이스타항공의 창업주는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다. 물론 이 의원은 자기 명의로 이스타항공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장녀 이수지 이스타홀딩스 대표이사와 아들 이원준 씨, 그리고 이 의원의 차명 주식 의혹을 받고 있는 친형 이경일 씨의 페이퍼컴퍼니 비디인터내셔널 분 7.7%를 포함해 총합 46.3%에 달하는 이스타항공 지분을 갖고 있었다.

이처럼 현역 여당 의원 일가를 상대로 하는 딜이었던 만큼 섣불리 입장을 발표하기에는 제주항공이 정치적 부담감을 느껴왔을 것이라는 게 항공업계 중론이다. 각 언론사 산업부 항공 분야 출입기자들은 끊임없이 이스타항공 인수 포기론에 힘을 싣는 기사를 내왔고, 제주항공 홍보실 관계자들은 때마다 "우리 공식 입장은 인수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이라고 답해왔다.

한편 본지는 지난 2일 '[단독]제주항공, 결국 이스타항공 인수 포기…조만간 발표 예정' 제하의 기사를 송고했고, 타지들도 인수 포기 수순을 밟고 있다고 하는 등 잇따른 언론 보도에 제주항공 측은 반박하지 않음으로써 포기설을 공식화 했다. 울고 싶던 차에 대신 뺨 때려준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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