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를 상대로 상호관세 부과를 예고하면서 동맹국을 막론하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미중 갈등과 자국 우선주의로부터 시작된 고관세 예고와 글로벌 보호무역 주의 확산에 따라 통상 환경이 급변하면서, 각국의 기업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국내 제조업 기업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방침대로 미국 안으로 들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는 분위기다. 이에 한국 기업들이 처한 난관과 대응 방법에 대해 짚어본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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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연합뉴스 제공 |
[미디어펜=김견희 기자]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조만간 자동차와 반도체, 의약품 등에 대한 품목별 관세를 발표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관세 압박에 따른 글로벌 기업들의 긴장감도 팽배해진 모습이다. 대미 투자를 적극 늘리는 기업이 있는 반면, 미국 내 제조 시설 투자를 망설이는 기업도 있는 등 전략 마련에 분주한 분위기다.
26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다음달 2일 국가별 상호관세에 집중한 이후 품목별 관세를 추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초기 우려와 달리 품목 또한 좁혀지면서 충격은 다소 적을 것으로 WSJ는 전망했다.
단 상호관세에선 한국도 피해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최대 교역국을 상대로 '표적 관세'를 부가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미 흑자 8위인 한국도 유럽연합(EU), 멕시코, 일본, 캐나다, 인도, 중국과 나란히 상호 관세 조치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80조 원이 넘는다.
트럼프가 예고한 상호관세는 상대국의 검역, 보조금 등 무역 장벽 수준을 파악해 미국이 이에 상응하는 관세를 매기겠다는 방안이다. 한국 정부는 상호 관세 대상국에 포함되는 상황에 선제적으로 대비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미 부과가 시작된 철강 관세 등에 대한 유예 협상도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전 정부의 공약과 보조금 등 관련 법을 모조리 뒤엎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 이후 관세 철폐 등 또 다시 기조가 바뀔 수도 있어 대규모 투자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기업도 있다. 특히 미국 내 시설 투자는 인건비 등 원가에 취약해 타 지역 판매가 어려운 만큼, 2~3년의 기다림이 나을지 등 선택을 망설이고 있다.
◆ 예정된 품목별 관세 부과...자동차·반도체·제약 등 타격 불가피
반도체 산업은 한국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만큼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미국 정부가 25% 관세를 부과할 시 한국의 생산·수출에 미치는 파급력은 매우 클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현지에 이미 공장 건설을 이어가고 있는 만큼 면세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업계의 기대감은 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현지 생산의 길이 열려 있어 관세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 일대에 반도체 공장을 착공했으며, 이 과정에서 미국 정부로부터 64억 달러(약 9조 원)의 공장 설립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지원 받기로 했다. 삼성전자가 미국에 들이는 비용은 모두 370억 달러(53조 원) 규모에 달한다.
같은 달 SK하이닉스는 미국 첫 반도체 패키지 공장 부지로 인디애나주를 선정했다. 아직 착공 이전이며, 공장 건설에 미국 정부로부터 4억5000만 달러(약 6200억 원)의 보조금과 세제 혜택 지원을 약속 받았다. 하지만 이 보조금은 아직 지급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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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 반도체 클린룸./사진=삼성전자 제공 |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삼성은 추가 투자 확대로 관세를 피하고 지원금 7조 원도 받아야 하며, SK하이닉스도 미국 내 반도체 패키징 공장 등을 설립해 관세를 피해야 한다"며 "두 기업은 미국 정부와 협력해 보조금 및 세제 혜택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쉬운 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특별법(칩스법) 축소·폐지 가능성을 지속해서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된다면 막대한 비용을 국내 기업들이 모두 감당해야 한다.
일각에선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장벽을 넘으려면 결국 대미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액션을 보여줘야 한다는 시각도 나온다. 면세 조건이 현지 공장을 통해 생산한 제품이기 때문이다.
변화무쌍한 관세 정책으로 가전 업계의 셈법도 한층 복잡해지고 있다. 기존까지 국내 기업은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가 맺고 있던 무역협정에 따라 멕시코 생산품을 무관세로 미국에 수출해왔다.
삼성전자는 멕시코 티후아나 공장과 케레타로 공장에서 각각 TV, 냉장고·세탁기·건조기 등을 생산 중이며, LG전자는 멕시코 레이노사·몬테레이·라모스 등 세 곳에 생산기지를 두고, TV·냉장고·전장을 생산하고 있다.
두 기업 모두 당장 멕시코 외 관세 영향을 받지 않는 생산 시설에서 생산량을 늘리는 방안으로 조율 중이지만, 고관세 기조가 장기간 이어질 경우 현지 생산 시설 확대 방안도 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제약 업계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미국은 한국 의약품 최대 수출 시장으로 관세 부과시 수출 감소와 매출 하락 예상된다. 지난해 의약품 대미 수출 비중은 전체 수출 중 18%를 차지한다.
특히 고관세로 국내 기업의 미국 시장 진출 어려움이 커질 경우, 역수입 비중이 확대돼 외국 제품의 가격 주도권이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같은 리스크를 감소하기 위해선 현지 생산시설을 구축하고 CMO 협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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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사진=현대제철 제공 |
◆ 이미 관세 적용된 철강업계...대미 투자 '글쎄'
미국은 이미 지난 12일부터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그간 쿼터로 판매 물량을 제한해 무관세로 수출하던 철강 업계는 이제 예외 없이 관세 부담을 안게 됐다.
미국 수출 타격 우려가 제기된다. 관세 부과로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수출 감소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선 오히려 수출을 제한하던 쿼터제가 사라지면서 대미 수출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라고 내다보는 시각도 있지만, 현장에선 경쟁력 약화에 따른 수출 감소 우려가 더욱 큰 분위기다.
고관세 대응을 위해 미국 현지 생산을 위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먼저 현대제철은 2029년 상업생산을 목표로 전기로 제철소를 짓기로 확정했다. 이 곳에선 연간 270만 톤 규모로 철강 제품을 생산하게 되며, 자동차 강판을 중심으로 판매할 예정이다. 포스코 역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미국 투자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철강업계는 미국 내 투자에 대한 고민이 크다. 현재 미국 내 철강업체들도 가격경쟁력이 없어 산업이 침체돼 있다. 특히 제조 시설을 만들어도 넓은 미국 땅에서 추가 운임비는 필수적이어서 사실상 비용 문제가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미국 수요가들이 값싼 철강 제품을 수입하려는 이유다.
국내 철강기업들이 미국에 수출하는 제조 시설이나 가공 시설은 대부분 멕시코 등에 주변국에 위치해 있다. 미국 내 제조가 사실상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현대제철의 경우 모사인 현대자동차라는 고객사가 있기에 수직 계열화 차원에서 미국 내 투자가 가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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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속도로에 차량이 정체돼 있다./사진=김상문 기자 |
자동차 업계는 철강업계와 달리 대미 투자에 분주한 모습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산 자동차에 고관세를 적용할 경우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완성차 및 부품 업계는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했으나, 최근 현대차그룹의 대규모 투자 발표로 관세 리스크를 다소 피해갈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국내 기업 중 가장 첫 번째로 대규모 대미 투자 계획을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2028년까지 미국에 자동차, 철강, 미래산업·에너지 등 3개 분야에서 210억 달러(약 30조 원)에 달하는 전략적 대미 투자를 이어가기로 했다. 미국에서 철강을 생산하고 미국에서 자동차를 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두고 빠른 결단력을 보여줬다는 업계의 평가가 나온다.
현대차그룹의 최대 수출 지역이 북미인 만큼, 이번 발 빠른 대미 투자 결정은 현재 4위 수준인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펜=김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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